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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웬디 커틀러의 국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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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박승희 워싱턴총국장

단상에 오른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오늘은 미국 국민과 한국 국민이 ‘윈-윈’ 하는 경사스러운 날”이라는 말로 축사를 시작했다. 잠시 뒤 커크는 “오늘을 만든 한 여성을 소개하겠다”며 그를 지목했다. 구석에서 생각에 골몰해 있던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고개를 들었다. 작은 키에 유난히 큰 눈, 웬디 커틀러 무역대표부 대표보였다.

 지나간 시간들에는 아쉬움이나 그리움이라는 효소가 작용해 기억을 각색한다. 추한 추억보다 아름다운 추억이 더 많은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웬디 커틀러에 대한 한국인의 기억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마찬가지다. 2007년 4월 한·미 FTA 협상장이었던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미국 협상대표였던 그는 한국 협상대표단엔 벽 같은 존재였다. 이름만큼이나 한국 측 요구를 하도 잘 ‘커트(Cut)’해서다. FTA 범국민반대운동본부에선 ‘불량 쇠고기 장사꾼’이라는 불미스러운 별명까지 붙였을 정도다.

 15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 뒤편에 자리 잡은 미 상공회의소에선 한·미 FTA 발효를 축하하는 리셉션이 열렸다. 준비된 식순이 끝난 뒤 커틀러에게 다가갔다. 그는 한국 언론이라는 말에 자리를 피하려 했다. 2007년 4월 하얏트의 당신을 기억한다고 했더니 걸음을 멈췄다.

 -5년 만에 한·미 FTA가 빛을 본다. 소감이 어떤가.

 “6년이다(커틀러는 2006년부터 협상을 담당해 왔다). 내겐 아주 감동적인(moving) 날이다. 긴 여행이었다.”

 -협상 파트너였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알고 있다. 꼭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해 달라.”

 -그의 별명이 글래디에이터(검투사)다.

 “당시 테이블을 사이에 둔 우린 둘 다 글래디에이터였다. 나나 제이 킴(김종훈)이나 한 가지만 생각했다. 바로 각자의 국익이었다. 그때도 호텔 밖에선 시끄러운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FTA를 둘러싼 한국 정치권의 논란에 대해 말을 꺼내자 “미안하다”며 커틀러는 자리를 떴다.

 6년 만에 한·미 FTA가 발효되는 순간을 지켜보며 커틀러는 ‘국익’을 말했다. 그렇게 미웠던 커틀러에 대한 기억이 각색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FTA에 반대하는 진영에선 잊고 싶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도 ‘국익’이 들어 있었다.

 “이런 중대한 정책에 대해 제발 대통령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적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에게 무척 섭섭한 마음이 든다. 미국은 세계 제일의 시장이다. 거기에서 한국이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일본·중국이 먼저 미국과 FTA 교섭을 했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노무현은 뭐 하느냐’고 비난이 빗발칠 것이다. (정부) 협상력을 말하는데, 대한민국 공무원을 너무 무시하지 말아 달라.”

 2006년 8월 31일의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