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잡학사전 (16) - 소프트 넘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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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0홈런과 100타점을 올리는 꾸준한 타자가 있다. 이 타자는 지난 6년동안의 성적이 평균 30홈런-100타점을 상회하는 15명의 메이저리거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이 타자는 매년마다 트레이드설에 시달리며, 팀에서 계륵(鷄肋)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여러분의 예상대로 이 타자는 LA 다저스의 1루수 에릭 캐로스(32)다.

과거 프랭크 토머스(시카고 화이트삭스)가 7년 연속(91~97년) 3할 · 20홈런 · 100타점 · 100볼넷을 기록하며 최고의 타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 처럼, '꾸준함(Consistency)'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로 인정받는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꾸준한 15명의 타자에 속하는 캐로스가 그토록 비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성적이 '소프트 넘버(Soft Number)'이기 때문이다.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통계는 가장 속기 쉬운 거짓말일 수도 있다. 즉 그 통계의 진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보다 분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소프트 넘버란 한 선수의 성적이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가치를 덜 가질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지난 4년동안(97~2000년) 캐로스는 609경기에 출장, 타율 2할7푼6리 129홈런 409타점의 수준급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캐로스의 월별 성적을 보면, 그의 성적이 왜 '소프트 넘버'인지를 알 수 있다.

에릭 캐로스 97-2000년 월별 성적월경기타수안타홈런타점타율4-5월18266917131106.2556-7월21480223660175.2948-9-10월21382622938128.27797-20006092297636129409.276
메이저리그에서는 발동이 늦게 걸리는 슬로우 스타터(Slow Starter)를 상당히 싫어한다. 특히 팀의 중심선수일 수록 더욱 그렇다. 이것은 순위경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초반의 기선제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9 · 10월의 시즌 막판 성적은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직결된다. 이런 관점에서 캐로스의 성적은 중심타자로서 결코 칭찬받을 수 없는 성적이다.

간혹 박찬호의 성적도 소프트 넘버로 지적받기도 한다. 우리는 유독 후반기에 강한 박찬호를 '뒷심 좋다'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포스트시즌이 물건너간 다음의 활약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팀이 가장 필요한 순간, 그 곳에 서 있을 수 있는 선수는 역시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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