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확 바꾸자] 3. 일본 성공 배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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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잡는데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떤가."

30여년 전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들고나온 '흑묘백묘(黑猫白猫)론' 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 축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실력이 뒤떨어지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누구에게서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워야 한다.

배움을 가로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체면과 자존심이다. '창피하게 어떻게 일본에 배우느냐' 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발전을 기대하긴 힘들다.

이제 일본을 배우자. 1990년대 초반까지도 '교과서식 답답한 축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 축구의 성공 비결 중 첫째는 '열린 마음' 이다.

일본은 80년대말 세계화를 앞당길 수 있는 방법으로 축구를 선택하고 ▶프로축구 J리그 출범▶2002년 월드컵 유치를 비롯한 '1백년 계획' 을 수립했다.

브라질에서 지도자를 대거 모셔와 지방 순회교육을 실시했고, 독일.이탈리아 프로리그 운영틀을 배워와 현(縣)리그에서 시행해본 뒤 93년 프로리그를 발족시켰다.

92년 대표팀 감독으로 네덜란드 출신 한스 오프트 감독을 영입, 다음해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을 1 - 0으로 꺾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브라질 출신 로베르토 펠컨이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고, 98년 프랑스월드컵 직후부터는 프랑스 출신 필립 트루시에가 대표팀과 올림픽팀.청소년팀을 지도하고 있다.

대표팀뿐 아니라 현재 J리그 감독 16명 중 외국인 감독이 10명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한국식 축구' 를 고집하는 국내 지도자들에게 배움의 자세를 가르쳐 준다.

두번째는 유소년 지도자에 대한 투자다. 프로팀들은 의무적으로 유소년 클럽을 보유하고 전문적인 지도자 교육을 시켰다. 브라질과 잉글랜드 등에서 선진 클럽축구를 배워온 유소년 지도자들이 벌써 2만5천명을 넘어섰고 선수는 1백만명에 이를 정도다.

유소년 축구의 중심이 학교에서 클럽으로 옮겨간 것이다. 어릴적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다녀온 일본 선수들은 이미 1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세계청소년선수권 준우승과 이번 아시안컵 우승의 주역들이 바로 이들이다.

일본은 2만8천2백18개 등록팀을 성인, 18.15.12세 이하의 4개 카테고리로 나눠 운영한다.

초.중.고교팀들의 연간.주간 훈련 스케줄은 일본축구협회가 만들어 시.도 협회에 전달한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감독에 따라 훈련내용과 방법이 천차만별이다.

일본 지도자들은 축구 선수가 만들어지는 시기를 20세 전후로 본다. 그때까지는 승부보다 공에 대한 감각이나 판단력을 기르는데 많은 투자를 한다.

물론 트루시에 감독이 "일본 선수들은 축구를 즐기지 않고 너무 심각하다" 고 불만을 토로하듯 일본도 아직 미완성이다.

일본을 배우되 따라가지는 말자. 목표를 아시아 정상이 아니라 세계 정상으로 잡으면 유럽이든 남미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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