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미술품] 포스코센터 앞 ‘아마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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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또는 차를 타고 가다 늘 만나게 되는 ‘작품’이 있다. 익숙한 풍경에 무심코 지나치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 작품이 왜 그곳에 있는지 궁금하다. ‘거리의 미술품’은 일부러 미술관을 찾지 않아도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한다. 첫 회는 서울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빌딩 앞에 있는 ‘아마벨(Amabel)’이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오가는 서울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빌딩 앞. 이곳을 15년 가까이 묵묵히 지키고 있는 작품이 있다. 미국 작가 프랭크 스텔라가 만든 ‘아마벨’이다. 이 작품의 원제목은 ‘꽃이 피는 구조물(Flowering Structure)’이었다. 작가가 작품 제작 도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친구의 딸 이름으로 제목을 바꿨다. 진흙 속 연꽃처럼 고철로 만든 꽃 한 송이. 작가는 이 철로 만든 꽃을 통해 파편화된 인간성의 회복이 여러 현대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포스코(옛 포항제철)는 1996년 스텔라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했다. 제작 비용은 180만 달러(지난 24일 현재 환율로 약 20억2410만원). 당시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든 국내 미술품이었다. 제작에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97년 9월 완성된 이 작품은 가로 11m 세로 5m로 무게가 30t에 달한다.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수백 개를 현장에서 짜맞추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제작 중에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새벽 고철장수가 못 쓰는 철인 줄 알고 몇 조각을 가져간 것이다. 경찰까지 나서 고철로 팔려가기 직전에 찾았다.

 아마벨은 대중에게 선보인 직후 또 한 번 위기를 겪었다. “고철 덩어리다” “흉물스럽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난과 마주쳤던 것이다. 급기야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 위기에 몰렸다. 철거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점점 거세지던 99년 7월 아마벨의 예술적 우수성을 알리는 설명회가 열렸다. 미술애호가로 알려진 방송인 조염남씨와 당시 아주대 부총장이었던 이성락씨가 주최했다. 조씨는 2003년 펴낸 책『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에서도 아마벨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아마벨은 결국 작가의 반발과 철거 반대 여론에 힘입어 지금의 자리에 당당히 서 있게 됐다. 철강회사 포스코와 강남의 중심 포스코사거리의 상징으로.

송정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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