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요즘 드라마 그 얘기가 그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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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중인 드라마의 대다수가 비슷비슷한 느낌을 주는 데는 다 까닭이 있을 것이다.

누구의 책임이 제일 클까. 겉보기만 그럴싸한 집을 지은 건축가에게 왜 이따위 집을 지었냐고 따지면 그는 당연히 세상엔 그런 집을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팔리지도 않을 집을 짓는 건 전문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야말로 진정 거주자의 행복을 위해 공을 들였노라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인 것도 같은데 사실은 근본을 잊고 있다. 좋은 집은 사람이 살 만한 집이다. 장삿속으로 지은 집은 조금 살다보면 금방 티가 난다.

신데렐라나 콩쥐팥쥐 이야기가 많은 까닭은 사람들이 그런 줄거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출생의 비밀을 다룬 이야기가 많은데 그것 역시 시청자의 꿈(세상 어딘가에 더 멋진 진짜 부모가 있다면…)을 대리표현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MBC에서 방송중인 미니시리즈 〈비밀〉의 구도가 그렇고, 시청률 수위를 달리는 KBS2의 〈가을동화〉 역시 신생아실에서 아이가 바뀌는 모티브로 출발했다.

MBC에서 새로 시작할 주말연속극 〈엄마야 누나야〉는 대리모를 통해 낳은 이란성 쌍둥이 아들의 비밀과 그들이 성장하여 벌이는 사랑 이야기가 중심축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에도 공식이 있는 듯하다. 선과 악의 대립이 분명하고 그 줄기는 신분상승의 '석세스(success)' 스토리여야 한다.

사람들은 보복을 즐긴다. 핍박받던 주인공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물론 사랑은 삼각구도여야 좋다. 국민드라마라고까지 불렸던 〈허준〉도 찬찬히 뜯어보면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재미의 유형 때문에 세상이 나빠진다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교육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콩쥐팥쥐 이야기를 들려줄 따뜻한 할머니의 품은 이제 없다. 그 자리를 텔레비전이 차지한 것이다.

미국 동포가 부지런히 한국의 드라마 시청을 자식들에게 권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배경이 '언어습득은 말할 것도 없고 권선징악을 확실하게 가르쳐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도발적 상상력과 기괴한(?) 인간관계가 등장하는 미국의 드라마와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식에 대입만 하는 것은 작가가 일류가 못됨을 고백하는 일이다. 일류는 새로운 틀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캐릭터의 창조야말로 방송을 예술로 승화하는 일이다.

〈모래시계〉의 영광은 금기시된 소재까지 확대하려는 실험과 도전정신이 밑바탕이 됐다. 그냥 뒹굴며 살 집도 좋지만 더 인간답고 품위 있게 주거할 쾌적한 집을 궁리하는 게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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