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김미현의 우리말과 영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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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현(23세)은 올해도 작년과 같이 LPGA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 펜의 한사람으로서 무척 기쁩니다. 새천년 올해는 박세리, Grace Park, 장정등 4-5명의 우리나라 여성 골프선수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여자 프로골프대회가 있을 때마다 상위권에 랭크되면서 지금 미국은 98년 박세리의 신인상 수상을 시작으로 그야말로 코리아 돌풍입니다.

미국은 PGA와 LPGA의 중요경기는 대부분 골프 전문 채널인 62번에서 중계방송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선수의 활약을 기대하고 저로서는 주말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시간을 내어 보고있습니다.

지난 9월 22일부터 3라운드 일정으로 The Safeway LPGA 경기가 있었습니다. 김미현등 우리나라의 낭자들이 참가 했었고 3라운드 최종 성적에서 우리나라 유망 신인인 장정과 99년 LPGA 신인왕을 수상한 김미현은 동타를 기록하여 공동 선두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LPGA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끼리 연장 결승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처음이지요.

중계방송을 담당했던 아나운서는 코리아 LPGA라고하면서까지 우리나라 골프와 아시아 골프의 성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연장전 결과는 결국 노련미(?)를 겸비한 김미현이 우승했습니다.

저는 골프를 배운지 얼마 안된터라 지금이 한창 재미있을때라서 주요골프경기는 시간을 내어 짬짬히 녹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날도 3라운드 경기와 김미현의 시상식을 녹화를 했는데 일(?)이 벌어 졌습니다.

우승자와는 미국 골프TV 에서 인터뷰를 하게됩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김미현은 올해는 첫 우승이지만 지난해에는 신인상까지 탈 정도로 우승도 몇번한 아주 유명한 선수입니다. 영어실력이 부족했던지 통역을 쓰더군요. 통역은 우리나라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방송에서 우리나라 말을 듣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 이날만큼은 김미현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하고 그다음 통역이 영어로 번역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말을 미국방송에서 들으니 정말 흥분되었습니다. 비록 통역이 너무 서투른 영어를 구사하긴 했지만...

그런데 이 부분이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김미현이나 통역이 영어도 잘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김미현의 말한마디였습니다.(다음의 대사는 80% 정확히 옮겼습니다.)

인터뷰: "어떤 홀에서 가장 힘들었습니까?"
김미현: "대체로 코스가 불규칙해서 힘들었는데 초반에는 잘 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3번 홀에서 망가지는 바람에 마지막 홀까지 힘들게 경기를 했습니다."
통역:"I broke down when I played 13 hole."

문제가 되는 부분은 "망가지다"입니다. 그리고 통역의 "broke down" 입니다. 우리나라 젊은층에서 주로 쓰는 말이지요.-망가지다. 아주 자연스럽게 망가졌다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봐서 그녀의 평소 언어습관이었던 같지만 공식 인터뷰에서 미국인이 못 알아듣는다고 아무 말이나 막 쓰는 것은 매우 잘못된 언행입니다.

더욱이 통역은 한 술 더 떠서 "broke down"이라고 했습니다. 이뜻은 "물건이 고장났다, 망가졌다"라고 주로 쓰이며 아마도 통역은 그대로 직역해서 쓴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쓸 경우는 "사람의 건강이 나빠졌다 또는 사람이 고문등에 굴복했다"라는 뜻입니다. 망가지다의 원래 의미인 어려움을 겪었다라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방송에서 당시의 우승소식을 다루면서 이 부분이 방송되었는지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저는 우승의 감동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석연치 않은 통역도 문제이지만 김미현이 공식석상에서 언어구사력이 아직은 세계적인 골프스타로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테니스와 더불어 골프는 미국에서 중상류층이 즐기는 스포츠입니다. 미국은 골프계의 중심입니다. 그 곳에서 활약하는 우리나라의 선수들이 우리나라언어를 이런식으로 구사하거나 그 말을 영어로 형편없이 통역되어진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미국을 무대로 하는 선수 본인이 영어를 구사 못한다는 것은 차치해두고서라도 우리말은 최소한 정상적인 언어로 말을 할 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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