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가 정크본드 '괴담'

중앙일보

입력

미국의 일부 대형 투자은행이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에 투자했다가 10억달러 이상의 큰 손해를 봤다는 소문이 월가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정크본드는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이 발행하는 것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대신 원금을 떼일 가능성도 높은 채권이다.

최근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기가 둔화하면서 정크본드의 부도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여기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이 상당한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이 소문은 꽤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피해를 본 것으로 거론되고 있는 투자은행은 모건스탠리.도이체방크.크레디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CSFB).도널드슨 러프킨 & 젠레트(DLJ)등이다. 이들 은행은 모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거나 명확한 답변을 피하고 있다.

소문이 퍼지면서 이들 은행의 주가는 급락했다.

모건스탠리의 경우 지난 5일 정크본드 부문의 공동 책임자인 드와이트 스피렐이 사임한 이후부터 10일까지 주가가 18%나 폭락, 시가총액이 1백90억달러나 감소했다.

투자자들이 스피렐의 사임이 투자 실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소문은 지나치게 과장돼 있으며, 스피렐이 물러난 것은 투자 손실과 무관하다" 고 해명했다.

CSFB도 자체적인 정크본드 투자 손실이 막대한데다 지난 8월 인수한 DLJ사마저 정크본드로 큰 손해를 봤다는 소문으로 역시 주가가 급락했다. 도이체방크도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정확한 손실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최근 정크본드 시장의 침체로 정크본드 투자 비중이 큰 이들 금융기관의 실적이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정크본드 시장이 1989년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무디스는 투기등급에 속하는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재조정, 75개사의 등급을 떨어뜨리고 29개사만 등급을 올렸다.

무디스의 존 론스키 수석연구원은 "신용등급이 내려간 회사들이 발행한 채권의 규모가 4백43억달러에 이른다" 며 "나스닥 시장의 침체로 증자도 곤란한 상황이라 정크본드의 부도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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