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佛 침묵극 〈보이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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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평 남짓한 좁은 방안. 중앙에 선 남자 보이체크와 오른쪽끝 벽에 기대 선 여자에게선 작은 미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계속되는 침묵.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드디어 여자는 남자의 뒤편으로 걸어와 그의 등에 몸을 기댄다.한시간 가량 되는 공연 중 인간의 감정이 묻어나는 따뜻한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목이다.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무용센터의 예술감독으로 조제프 나주가 1994년 발표한 침묵극 〈보이체크〉의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의 작품은 무용극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사실적이고, 연극적인 줄거리를 기대하기엔 추상적이다.

지난 주말 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올려진 이 작품의 줄거리를 이해한 관객이 거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난한 병사 보이체크가 아내의 불륜사실을 알고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켜 아내를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19세기 낭만주의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원작을 토대로 나주는 현대사회의 인간소외를 추상적으로 호소한다.

7명의 남녀 배우들의 몸을 빌려 여러개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극을 끌어나간다.

배우들은 입에 넣은 유리구슬을 뱉어내는가 하면, 오줌을 내지르고, 입안의 음식 찌꺼기를 토해낸다. 사과를 손으로 으스러트리고, 자신의 내장을 도려내 씹어삼키는 등 괴이한 동작이 끝없이 이어진다.

시종 자신이 맡은 동작을 기계적으로 풀어나가는 배우들의 모습은 종종 객석의 웃음을 끌어낸다.

음악에 맞춘 일반적인 춤동작은 없었지만, 무용으로 단련된 배우들의 격투장면과 느릿한 동작 속에서 순간적으로 공포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리듬의 완급조절 등은 무용작품 이상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추상적인 배우들의 움직임과 달리 병자처럼 회색칠을 한 얼굴, 누더기 같은 의상, 처참하기 그지없는 무대장식등은 밑바닥 세상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자신의 목에 늘어뜨려진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려는 보이체크의 모습에서 하층민의 허망한 삶을 희극적으로 묘사한 나주만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조제프 나주는 1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세계무용축제 참가작 〈소매속의 시간〉을 선보인다. 02-766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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