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장신화 뒤엔 '파괴의 역사'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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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정리하면 젊은 사회학도의 탈(脫)근대화론이다. 저자 홍성태(35)는 현재 계간 문화과학의 편집위원. 문화과학은 1992년 실천적 문화운동을 지향하는 연구 모임을 모태로 창간됐다.홍씨는 이 모임에서도 젊은 축에 속한다.

이런 정체성을 기반으로 홍씨는 나름대로의 탈근대화론을 전개한다.글은 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발표했거나 미발표한 11편으로 구성됐다.

개별적으로 작성된 글이지만, 기존의 '지역개발' 을 '지역파괴' 라는 관점에서 짚어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의 탈근대론의 사상적 기반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그는 무반성적 근대화가 초래한 위험성을 경고하며 세계를 '위험사회' 로 규정하고,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 '성찰적 근대화' 로의 전환을 역설했다.

홍씨도 이같은 벡의 생각에 일단 공감하며 논지를 펴나가는데, 한국 사회를 판독.해석하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

외국 담론의 한국적 변용(變容)은 언제나 필요하고 당연한 일이어서 그 자체로는 관심의 대상이 못된다.

문제는 적용 방식의 합목적성인데, 바로 이 점에서 홍씨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흥미있는 해법을 도출하려 애썼다.

그가 진단한 지난날 한국사회의 성장신화는 '파괴의 역사' 에 불과한 허상. 그는 과거 군부독재를 '파괴독재' 라는 말로 환원해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장 난 기관차처럼 맹목적으로 달려온 위험사회의 행로, 바로 그것이었다.

1995년 무려 5백2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의 붕괴 사고에서 그는 폭압적 근대화의 붕괴를 읽는다.지역의 마구잡이 개발과 그로 인한 환경오염도 예외일 수 없다.

꼬집기만 있고 대안이 없다면, 그런 책은 불구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이 책은 구체성이 부족하긴 해도 탈위험사회를 넘어서는 방안에 대한 모색의 흔적을 보인다.

'생태사회' 와 '문화사회' 는 홍성태식 성찰적 근대화론의 쌍두마차. 9장 '서울의 생태화와 문화사회의 구상' 에서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난다.

용산의 '서울 시민공원' , 한강의 버들섬, 공사가 한창인 경복궁, 광화문 앞의 '광화문 시민 광장'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태계 복원의 숨소리를 들으며 탈근대화의 싹을 찾고 있다.

그는 정치에서도 생태와 문화의 숨소리를 느껴야 한다고 주장한다.난맥상에 빠진 제도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중정치로의 이행, 생태적 사안에 집중하는 정치테제의 개발 등을 '생태정치' 의 목표로 설정했다.

여기서 정치근대화에 대한 벡의 정의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정치적 근대화는 정치를 탈권력화하고 해방하며 사회를 정치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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