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소통] '스트레인지 데이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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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캐슬린 비글로가 감독을 맡고 그의 전 남편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에 가담한 공상과학영화로 1995년 제작됐다.

여기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사람의 경험을 기록하고 재생해내는 경험재생장치. 머리 위에 이 장치를 덮어쓰고 '녹화' 스위치를 누르면 그때부터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작은 디스켓에 저장된다.나중에 누구든 그 디스켓을 '재생' 시키면 그 사람이 겪었던 일들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을 기억재생장치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왜냐하면 인간의 경험이 기억으로 채 이전되기도 전에 경험 그 자체를 생생하고도 완벽하게 기록하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경험재생장치가 이론상 가능하냐에 대해서는 따지지 말기로 하자. 영화가 재미없어질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완벽한 원격현전 (telepresence) 을 꿈꾸는 가상현실장치(VR) 의 개발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바로 이러한 경험재생장치이므로.

전직 경찰인 주인공 레니(랠프 파인즈) 는 다른 사람의 특수한 경험을 암거래하며 살아간다.작은 디스켓에 담긴 다른 사람의 경험을 팔면서 그는 "이것은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다.

이것을 통해 당신은 다른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다" 고 한다.내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느끼고, 즐거워하고, 고통받는 것을 네가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실로 완벽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궁극적인 미디어다.

레니는 옛 애인 페이스(줄리엣 루이스) 와의 즐겁고 짜릿했던 사랑의 순간들을 디스켓에 담아 두고 이를 반복해 경험하곤 한다.

덕분에 레니는 이미 떠나버린 페이스를 영원한 애인으로 간직한다.이러한 장치가 개발되면 당신도 첫사랑과의 즐거운 경험을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첫사랑은 말 그대로 영원한 것이 된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은 이제 더 이상 추억이 아니며,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는 현실이 된다.

그러나 마냥 즐거워 할 일만은 아니다.언짢게 들리겠지만 당신의 애인은 당신 몰래 다른 누군가에 의해 '경험'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 누군가가 돈이 필요하다면 (또 당신의 애인과의 경험이 정말 짜릿한 것이었다면) 그는 당신의 '디지털 애인' 을 마구 복제해 상품화하거나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 올려놓을는지도 모른다.

자그마한 디스켓 속에 갇힌 당신의 불쌍한 애인은, 마치 알라딘 마법사가 누구든 램프를 문지른 사람을 위해 나타나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누구든 경험재생장치를 켜는 사람에게 나타나 당신과 함께 했던 사랑의 행위를 정열적으로 계속 반복할 것이다.

심지어 그가 당신의 아들이나 딸이라 할지라도. 경험재생장치가 등장하게 되면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기는 것보다 자신의 경험과 추억을 지우고 정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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