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담임 모시기 비상 걸린 학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동호
내셔널팀장

서울 서초구 모 중학교 A교장은 요즘 교사들에게 매일 전화를 건다. 교사들이 담임을 기피하기 때문에 담임 인선 작업을 벌이는 것이다. 개학 때까지 어떻게든 교사들을 설득해 담임 자리를 모두 채우겠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생활지도부장 등 학교 업무를 맡을 각종 부장 자리를 채우는 것은 더 큰 고민이다.

 지금까지 몇 차례 1~3학년 담임과 부장 인선을 했지만 계속 다시 짜고 있다. “교사들이 이런저런 이유와 명분을 들이대며 거절하는 바람에 번번이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담임을 맡기기 위해 온갖 당근을 제시하기도 한다. 학급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거로운 문제는 교장이 책임져 줄 테니 제발 학급만 맡아 달라는 간청도 한다. A교장은 “개학이 코앞이지만 이런 일들 때문에 쉴 틈이 없다”고 호소한다.

 학교가 개학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교사들은 학생 지도가 힘들다는 이유로 담임 맡기를 꺼린다. 새 학기부터 시행되는 학생인권조례를 계기로 학생 지도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우려는 분위기에 편승해 번져 나갈 학생들의 방종이다. 복장부터 골칫거리다.

 학생 교복을 거래하는 인터넷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학생들은 ‘짧은 치마, 줄인 교복’을 외치며 중고 교복을 사고팔고 ‘짧치(짧은 치마)’ ‘똥치(짧치보다 더 짧은 치마)’ ‘빽치(몸에 딱 달라붙는 치마로 빽바지에서 유래)’라는 은어까지 만들어내며 불량 치마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30㎝ 하의실종 교복치마’도 거래되는 모양이다. 담임을 기피하는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과연 이 정도인지 올해 고1이 되는 딸에게 넌지시 확인해 봤다. 고등학교에 가면 이마·귀·뒷목이 보이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면서다. 딸은 “그런 규정은 있으나 마나야. 중학교 때도 있었는데 전혀 문제 없었다고.”

 더 이상 긴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다. 자유분방하고 구김살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기성세대의 기준으로 생활태도와 복장을 지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질풍노도(疾風怒濤)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서울 학생인권조례에는 차별금지와 폭력금지, 교육활동의 자유, 개성실현의 권리 등이 포함돼 있다. 인권이라는 표현만큼 취지는 좋다. 이 중에서도 차별금지와 폭력금지 조항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잘만 하면 학교폭력을 차단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해본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구두선(口頭禪)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린 학생들 사이에선 힘센 아이가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학교에서 이를 막는 것은 교사들의 책무다.

 하지만 마땅한 훈육 수단이 없다. 이상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인권조례 때문이다. 교육감들은 학교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명예 담임을 맡아 현장을 체험해 보길 권하고 싶다. 하루는 짧으니 적어도 일주일은 지켜보고 학생인권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