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아들과 함께 달린 어머니의 마음

중앙일보

입력

"봉주야, 힘내라"

시드니 올림픽파크의 삼성 홍보관. 대형 스크린 앞에 자리잡은 마라토너 이봉주의 어머니 공옥희(63)씨는 더이상 아들이 달리고 있는 올림픽 중계를 볼 수 없었다.

놀란 마음을 안정시킨다고 청심환까지 먹었지만 TV속의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마치 고통을 참고 질주하는 마라토너의 얼굴처럼 일그러졌다.

생전 처음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상상만해도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는 공씨는 지금까지 한번도 아들이 출전하는 마라톤 중계를 보지 않았다.

출발 신호가 울린지 54분. 상기된 표정으로 아들이 모니터에 비칠때마다 치마 고름을 부여잡던 공씨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었구나..."

공씨는 주변 사람들을 뿌리치고 홍보관 밖으로 나갔다. 가슴이 너무 뛰어 경기를 더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바람을 쐬고 온 공씨는 아들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삼성홍보관에서 올림픽 주경기장까지의 거리는 1km 남짓.

사위 김신호씨의 부축을 받은 공씨는 불공을 드리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을 옮겼다.

"제발 힘을 내서 1등으로 들어와라" 가슴이 두근거려 TV 중계도 못보겠다던 공씨는 마치 아들에게 힘을 주려는 듯 주경기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주경기장. 귀가 터지도록 시끄러운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선수는 아들 봉주가 아니었다.

두번째 선수도, 세번째 선수도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봉주는 20위권으로 처지며 예상 밖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50여년간의 농사로 검게 타버린 어머니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슬픔과 사랑이 뒤섞인 목소리로 되뇌었다.

"봉주야, 잘했다" (시드니=연합뉴스)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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