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인사이트] 법정관리 고통 속 ‘솔표’ 브랜드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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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심재우
자동차팀장

1990년대 중반까지 조선무약은 우황청심환과 위청수, 쌍화탕을 ‘솔표’ 브랜드로 만들어 꽤 잘나갔다. 최근 조선무약 근로자들이 ‘국민연금 운용사 케이앤피의 횡포에 대한 근로자들의 호소’라는 탄원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하면서 조선무약이 다시 세간에 회자됐다. 채권자인 국민연금기금 운용사가 정상영업을 유지한 채 공장 매각을 진행하는 회생절차에 반대하고 파산·경매를 추진하고 있다는 게 회사와 노조 측 주장이다. 한마디로 조선무약을 공중 분해시키려 한다는 설명이다.

  케이앤피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앞서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경매로 직행하는 게 빠르고 정확할 수 있다. 그러나 신속·정확보다 중요한 가치가 숨어 있다 . 87년 역사를 자랑하는 솔표의 브랜드 파워다. 창업주 에 이어 2세 경영인 박대규 회장은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를 낸 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의 아들 박종환 경영위원장은 화의기업으로 전락한 조선무약을 맡아 노조와 함께 고군분투해 왔다. 화의 이전 800명에 달하던 임직원 수는 현재 80여 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법정관리중이다. 박 위원장은 솔표 브랜드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 여러 대기업이 솔표만 내놓으라는 제안을 많이 해왔지만, 솔표만 팔아먹고 나 혼자 빚더미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솔표 브랜드는 지난해 7월부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일반의약품을 편의점이나 할인점에서 팔 수 있게 되면서 위청수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아무런 영업활동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편의점과 할인점에서 주문이 들어왔고, 연매출로 환산해 100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800억원을 넘었던 최대 매출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의미 있는 반전이다. 박 위원장은 “정상적 회생절차를 밟게 된다면 땅값이 오른 본사와 공장 부지를 매각해 빚을 갚은 뒤 지방에서 새출발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달부터 본지는 ‘중견기업으로 스텝 업(Step Up)’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러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기술력이나 최고경영자 리더십은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브랜드 전략은 글로벌 수준과 거리가 멀었다.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이라 브랜드의 필요성을 느끼기 힘들다”는 최고경영자가 많았다. 솔표처럼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브랜드는 희망의 빛줄기가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려움을 겪어온 한국GM이 지난해 3월 ‘쉐보레’ 브랜드로 변경한 이후 인지도가 98%까지 올라간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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