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우울한 마쓰자카

중앙일보

입력

올해 스무살인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새천년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마쓰자카가 야구를 시작한 후 이렇게 수난을 많이 겪은 것도 올해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매스컴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고졸 최고대우로 프로에 입문한 지난해 마쓰자카는 '천재투수','괴물투수'란 수식어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다.

시즌 시작부터 세이부의 선발진에 들어간 마쓰자카는 16승5패 방어율 2.60의 성적으로 다승왕을 차지했고 신인왕까지 거머지었다. 나아가 시드니 올림픽예선 대만전에선 완투승을 해내,일본야구를 시드니로 이끌기까지 했다.

데뷔 2년차인 올해도 마쓰자카의 성적은 외형상으론 리그 정상급이다. 12승 7패의 성적으로 퍼시픽리그 다승,탈삼진1위(129개)이고 방어율,승률도 상위권에 올라있다. 인기도 여전히 퍼시픽리그 최고이다.

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면 마쓰자카에게 올시즌 어려움이 많았다는걸 알 수있다. 먼저 마쓰자카의 올시즌 방어율은 4.36에 이른다. 올시즌 퍼시픽리그가 유난히 타고투저 현상이 심하다는걸 감안한다 치더라도 작년 방어율(2.60)에 비해 너무 높다.

이제 어느정도 타자들이 마쓰자카에 적응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마쓰자카는 올 시즌 6월과 시드니에 오기 직전까지 초반에 집중타를 얻어맞고 대량실점한 경기가 많았다.

그결과 6월 마쓰자카는 일시적으론 2군까지 내려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고, 9월달엔 3연패에 발목부상까지 당하며 에이스로서 세이부의 8연패를 막지못하고 침몰, 올시즌 세이부의 사실상 우승실패를 야기했다.

마쓰자카는 이 모든 부진을 시드니올림픽에서 만회하려 했다. 시드니에서 일본야구를 금메달로만 이끈다면 다시한번 일본 에이스란 명성을 국내외에 떨칠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첫 경기인 미국전에서 10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고, "모든게 장점이다. 우리팀에 오면 25승은 할 것이다." 란 양키스 스카우터의 극찬을 들을 때까진 모든게 마쓰자카의 의도대로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마쓰자카는 한국이란 벽을 넘지 못했다. 예선전 한국전을 앞두고 "한국은 이미 끝난 팀 아니냐?"며 깔보았지만 결국 1회에만 이승엽에게 2점홈런을 맞는 등,4실점하며 침몰하고 말았다.

3,4위전에서도 한국과 다시 맞붙은 마쓰자카는 설욕을 노렸지만 이번엔 구대성에게 패했다. 이 경기에서 마쓰자카는 나름대로 호투했지만 구대성이 더 잘 던졌다. 결국 마쓰자카는 또다시 한국에 패했고 일본야구는 올림픽 출전사상 처음으로 메달획득에 실패하는 충격을 맛봐야만 했다.

실제로 올림픽에서 보여준 마쓰자카의 투구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미국전 1경기,한국전 2경기에 등판한 마쓰자카는 자신이 등판한 모든 경기를 9이닝 이상 책임지는 에이스다운 근성을 보여주었다. 에이스답게 침착했고 위기관리 능력도 빼어났다. 호투에 비해 타선지원이 부족했던 불운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마쓰자카는 패자였다. 자신이 등판한 3경기에서 단 1승도 건지지 못했고 특히 일본야구의 한국전 연패를 끊어주지 못했다. 항상 이겨왔고 승자의 화려함에만 익숙해져 있던 마쓰자카이기에 패배는 더욱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3,4위전 다음날 일본 스포츠신문들은 일본선수의 메달획득보다 마쓰자카의 패배소식을 더 큰 뉴스로 다루었다고 한다.)

3,4위전에서 패한 뒤 마쓰자카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일본 최고라고 자부했던 투수이니만큼 자존심의 상처가 컸을 것이다. 이번 패배가 앞으로 마쓰자카를 한단계 더 성숙시켜줄지 아니면 더 긴 슬럼프로 가는 징표인지는 두고 봐야겠다.

하지만 이제 겨우 20살인 마쓰자카에게 이번 올림픽이 입에 쓴 약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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