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여 200m 동메달 자야싱헤 "악몽이여 이젠 안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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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이었다.

육상 여자 2백m에서 동메달을 따내 조국 스리랑카에 52년 만의 첫 메달을 안겨준 수산티카 자야싱헤(25). 자야싱헤는 지난 날의 아픔을 깨끗이 씻어 버리려는 듯 스리랑카 국기를 몸에 두르고 트랙을 한없이 돌았다.

1997년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혜성처럼 등장해 여자 2백m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자야싱헤에게 지난 3년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기억으로 가득찼을 뿐이다.

고무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농장에서 맨발로 훈련했던 자야싱헤에게 불운이 닥친 것은 아테네대회를 다녀온 직후였다. 유부녀인 그에게 스리랑카 정부 관료들이 치근덕거리면서 불행의 씨앗은 자랐다.

'눈부신 가젤(아프리카 영양)' 로 불릴 정도로 미모를 자랑하는 그에게 부패한 관료들이 성추행을 일삼자 자야싱헤는 이를 언론에 폭로했다.

성추행 스캔들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자야싱헤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8년 4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불시 약물검사에 걸려 선수 자격을 영구 박탈당했다.

생리 중에 먹었던 진통제가 약물의 전부였던 자야싱헤는 스리랑카 정부의 샘플 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관료들이 남편을 살해하려 했다" 며 또다른 폭로로 맞섰다.

그러나 자야싱헤는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금지 약물 복용 의혹에서 벗어났고 아시안게임 도중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이후 자야싱헤는 미국인 토니 캠벨 코치의 지도 아래 시드니에서의 재기를 꿈꾸다 마침내 개인 최고기록인 22초28로 동메달까지 거머쥐었다.

미국으로 이주할 당시 "부패한 관료들이 존재하는 한 다시는 스리랑카를 찾지 않겠다" 고 다짐했던 자야싱헤는 경기가 끝난 뒤 "동메달을 목에 걸고 다음달 스리랑카를 방문하겠다" 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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