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소토마요르 빗줄기에 금메달 날려

중앙일보

입력

그의 실력을 하늘이 질투한 것일까.

남자 높이뛰기 세계기록(2m45㎝) 보유자 하비에르 소토마요르(33.쿠바)가 갑자기 쏟아진 빗줄기에 금메달을 날리고 말았다.

지난 24일 육상 경기가 펼쳐진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 소토마요르는 2m32㎝를 1차시기에 바도 스치지 않고 사뿐히 통과, 결선 진출자 중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었다.

2m35㎝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단 5명. 유일한 라이벌 바체슬라프 볼로닌(러시아)마저 탈락했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껴 어두워졌지만 이때까지 아무도 소토마요르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신예 세르게이 클류긴(러시아)이 첫번째로 도약했다. 옷깃을 스친 바는 조금 흔들렸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행운의 통과였다.

두번째는 소토마요르. 이전까지 한차례의 실패도 없던 소토마요르는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진 듯 스텝이 엉키며 바를 건드리고 말았다. 패착이었다.

컴컴해진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뿌리기 시작했다. 바람마저 심해 앞을 보기도 쉽지 않았다. 바닥마저 미끄러워지자 경기를 아예 포기하는 선수들까지 속출했다. 악천후 속에서 정상적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소토마요르는 은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그로서는 올림픽이 명예회복의 기회였다. 지난해 7월 팬암게임에서 코카인 양성반응이 나와 자격정지를 당한 것은 물론 마약복용자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방세계가 나를 이용해 쿠바의 명예에 먹칠을 하기 위해 소변 샘플을 조작했다" 며 결백을 주장하며 끈질긴 복권 투쟁 끝에 지난 7월 올림픽 출전권을 따낼 수 있었다.

그는 "올림픽 무대는 끝났지만 세계신기록 도전은 계속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인간 한계를 넘어서려는 그의 투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