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세 … 출총제 …기업 압박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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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가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부활과 ‘재벌세’ 신설 등 정치권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대통령부터 장관급까지 나서 조직적으로 반격을 가하는 모양새다.

 31일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최근 정치권에서 고조되고 있는 ‘기업 때리기’ 흐름을 “기업 배싱(bashing)”이란 말로 표현했다. 영어 ‘배싱’은 맹비난·맹공격을 뜻하는 말이다. 뉘앙스까지 살려 번역하자면 ‘일방적이고 과도한 공격’ 정도가 된다. 1980년대 초반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격화되면서 미국에서 반일 감정이 고조되자 이를 가리키는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기업을 너무 위축시키면 투자와 고용을 줄일 수 있다”며 “요즘 모든 정치환경이 기업을 위축되도록 만들고 있는데 이렇게 하는 건 결코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이해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기업이 위축되지 않도록 (국무위원이) 관심을 갖고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기업의 사기(士氣)가 중요하다는 언급도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노골적으로 ‘좌향좌’하는 정치권에 대한 공개적 우려 표시인 셈이다.

 실물경제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 홍석우 장관도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포퓰리즘 정책’이 기업의 투자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이 투자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있는 세제에 대한 아이디어, 출총제 부활 등의 언급이 정제되지 않고 나와 기업의 투자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출총제 부활 주장과 관련해선 “이번 정부에서 각계 의견을 들어 폐지했는데 현재 딱히 부활해야 할 여건은 아니라고 본다”며 “(부활 주장은) 정책적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해 나왔다기보다는 포퓰리즘의 일환이 아닌가 싶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홍 장관은 “동반성장은 제도가 아니라 지금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합의로 이루는 게 좋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최근 대기업 계열 빵집의 연이은 철수와 관련해선 “큰 기업이 골목상권 업종에 뛰어드는 것은 지탄받아야 할 일”이라며 “대기업이 동반성장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차원에서 지혜롭게 대처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도 1일 조찬 강연에서 야당의 출총제 부활 주장을 비판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야권에서 검토 중인 ‘재벌세’는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킨다며 반대했다. 그는 “각 정당의 대기업집단 때리기는 전 세계적 양극화에 대한 반작용의 측면도 있지만, 가진 쪽과 힘 있는 쪽에 대한 지나친 질타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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