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피플] 통역 자원봉사 황규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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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 고국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민족 비극의 뿌리가 분단에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돼요. 올림픽이 남북 모두 서로를 경계 대상이 아닌 협력 상대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어 통역 자원봉사자로 뛰고 있는 교포 황규상(41)씨의 소망이다.

황씨는 지난 16일부터 올림픽 선수촌에서 남북 선수단의 통역을 돕고 있다.

올림픽에선 열흘, 그리고 올림픽 직후 열리는 장애인 올림픽에선 열이틀 동안 매일 여덟시간씩 일할 예정이다.

"1986년에 열린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도 외국 선수단 임원들의 통역을 맡았어요. 그때 경험도 있고 시드니올림픽조직위(SOCOG)의 요청도 있어 선뜻 자원봉사에 응했습니다."

그는 이중 언어능력을 올림픽 행사에 활용해 호주와 고국 선수들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장애인 올림픽까지 봉사를 계속하는 것은 인본주의를 생명으로 하는 올림픽 정신에 비춰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한다.

"외국에 있다고 고국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냉정한 눈으로 고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선수촌에서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식당에서 마주친 북한선수들에게 선뜻 얘기를 걸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반공교육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했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이 평남 진남포 출신의 실향민인데도 말이다.

"교민들도 분단의 피해자입니다. 남북 대치상황 때문에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해외교포를 일종의 통제대상으로 간주한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론 남북 모두 진정 가슴을 열고 서로를 아끼며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말이 조금 무거웠는지 빙긋이 웃는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한 황씨는 호주 연방정부 등에서 일하다 6년 전부터 한인 밀집지역인 스트라스필드에서 이민 법무사로 일하고 있다. 호주 정부가 공인한 번역관.통역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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