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인사이트] 스마트폰으로 측정한 기업의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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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심재우
자동차팀장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즐겨 보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1월호가 ‘행복’을 주제로 커버스토리를 꾸몄다. 장장 50여 페이지에 걸쳐 기업인과 종업원에게 행복이 무엇이고 행복이 필요한 이유를 경영학적 접근법으로 상세하게 다뤘다. 29일 폐막한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도 그랬지만 자본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일맥상통한다.

 이 가운데 다소 특별한 실험이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행복을 측정하는 연구였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학생이 고안한 ‘당신의 행복을 기록한다(Track your Happiness)’라는 프로젝트다.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을 내려받은 83개국 1만5000여 명의 아이폰 사용자에게 매일 몇 차례씩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을 보냈다. 아이폰 사용자는 이 질문을 받고 자신의 기분 상태를 ‘매우 좋다’와 ‘매우 나쁘다’ 사이 적절한 곳에 놓은 다음 현재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표기해 다시 보냈다. 그 결과 다소 색다른 결과가 나왔다. 빈둥거리는 시간보다 뭔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 행복도가 높았다. 하버드대 대니얼 길버트(심리학) 교수는 “피고용인은 도전정신을 갖고 뭔가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희열과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계량됐다” 고 말했다.

 한국의 근로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최장 근로시간의 주인공들이다. 일을 많이 하는 만큼 행복할까. 일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과 일에 집중하는 것은 다르다. HBR이 장려한 일자리는 단순 반복되는 업무가 아닌, 도전하려는 의욕을 자극하는 창의적인 일자리를 일컫는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휴일근무 시간을 법정근로 시간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자동차업계, 특히 현대차 노사가 모두 반발했다. 노측은 휴일수당 같은 소득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고, 사측은 고용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 부담을 느꼈다. 장시간 근로가 행복과 반비례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행복은 소득과 비례하는 함수일 뿐이다.

 정부가 최우선 정책의 하나로 삼는 청년 일자리 문제도 그렇다. 젊은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구체적 대안과 지원이 없는 단순 일자리가 아니다. HBR의 지적처럼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일에 몰두해 행복을 느끼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주엔 대기업 3세들이 ‘빵집’ 사업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잠깐 행복해지는 사람은 골목 빵집 자영업자가 아니라 빵집 체인을 경영하는 다른 대기업일 수 있다. 대기업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움츠릴 게 아니다. 남들 다 하는 사업을 패스트 팔로(Fast follow)하기보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행복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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