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조급증에 잃은 첫 금메달'

중앙일보

입력

"초현아 절대 서두르면 안 돼. 마음 느긋하게먹고 당겨야 한다."

16일 오전 11시(한국시간 오전 9시) 시드니올림픽의 첫 금메달이 나오는 시드니 세실파크 사격경기장.

여자공기소총 결선에 선두로 나서는 강초현에게 스승 강재규 유성여고 감독은 근심어린 특별한 주문을 했다.

평소 페이스대로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라는 것. 본선 1위로 올랐지만 2위그룹과는 불과 2점차.

평상심을 잃으면 단 한 발에 무너지는 게 사격이라는 점을 누구 보다도 잘 아는 강 감독은 "본선에서 너무 빨리 쏴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잔뜩 걱정했다.

결전의 시간은 어느새 종착역에 다다랐고 한국선수단이 몰린 스탠드 상단은 "금메달이다"는 희망에 찬 속삭임으로 술렁였다.

그러나 9발째의 총성이 울리자 상황은 돌변했다.

무서운 추격자 낸시 존슨(미국)이 선두 강초현이 10.5점을 내자 보란 듯 10.7점을 쏴 처음으로 선두를 빼앗았다.

기록은 487.8점으로 강초현과 같았지만 시리즈차에 앞서 1위.

이제 마지막 10발째.

세실파크, 나아가 전 세계가 이 한 발에 숨을 죽인 듯 정적이 감돌았다.

강초현의 귀에서는 지난해 눈물로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아버지의 "힘내라"하는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이때 5번 사대의 존슨의 총성에 탄성과 한숨이 다시 엇갈렸다.

9.9점. 강초현이 최소한 10점만 쏴도 그토록 꿈꿨던 한국의 첫 금메달이 굴러들
어 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호흡을 가다듬은 강초현의 손가락이 떨리는 순간 벅찬 기대는 땅이 꺼질 듯한 탄식으로 금세 바뀌었다.

9.7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뒤늦게 어이없는 점수에 역전패를 확인한 강초현은 물론 대표팀 동료 선후배들도 둔기에 얻어맞은 듯 멍하니 하늘을 쳐다볼 뿐.

`아, 은메달이구나.'

시드니에 와서도 성당에 나가 금메달을 위해 기도를 올렸던 김일환 감독.

다 잡았던 금메달을 놓친 김 감독의 눈망울엔 이슬이 맺혔고 강초현은 "너무 억울하다"며 흐느꼈다.

강초현은 "격발 시간을 늦추려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며 얄궂은 운명을 한탄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시드니=연합뉴스)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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