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큰물에서 놀아야 더 크는 ‘코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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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송종호
중소기업청장

일본에 가면 ‘코이’라는 잉어가 있다. 원래 ‘코이’라는 말 자체가 잉어를 뜻하는데, 요즘은 주로 니가타현의 순종 잉어를 이렇게 부른다. 코이는 잉어 중에서 지능이 제일 높다고 하는데, 가장 먼저 지진을 감지한다고 해서 일본 정원의 연못에서 관상용으로 즐겨 길러 왔다. 그런데 이 코이는 삶이 아주 특이하다.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연못에 넣어두면 25㎝까지 큰다. 더 놀라운 것은 강물에 방류할 경우 연못의 5배에 가까운 120㎝까지도 성장한다. 코이는 자기가 숨 쉬고 활동하는 세상의 크기에 따라 피라미도 대어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이처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카네기 명언집 등에서는 ‘꿈의 크기에 따라 성장한다’는 취지로 이해한다. 맞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은 ‘왜, 어떻게 꿈의 크기가 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한다. 코이의 사례를 다시 되짚어 보면 성장이라는 것은 결국 ‘활동하는 무대의 크기’와 ‘다른 주체와의 교류의 폭’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무대란 물리적 장소라기보다 ‘경쟁의 장소’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흔히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지만 사람 없는 서울은 백 번 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협력자가 될 수도 있고,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수많은 주체가 활동하고 있는 곳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최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미 FTA 체결 등으로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도 경쟁 수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이제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의 성장 한계에 봉착한 한국 경제는 마치 20㎝의 성장 한계를 보이는 연못 속의 코이를 연상케 한다. 지금이야말로 ‘경쟁의 장소’를 강물로 옮겨 더 큰 무대에서 다양한 주체들과 어울리면서 기존의 틀을 깨야 할 때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부딪혀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언제까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연못 속에 안주할 수는 없다. 모바일 혁명에서 비롯된 오픈 생태계 바람은 이제 모든 경제 분야의 동맥을 파고들 것이다. 어차피 맞이할 변화라면 먼저 부딪혀보고 빨리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60억분의 1’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오랜 기간 격투기의 황제로 군림해오던 표도르가 미국 무대에서 3연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노쇠화 등 여러 요인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강자들과 겨룰 수 있는 UFC라는 최대의 무대를 회피하면서 한정된 파트너들과 비공개 훈련을 고집한 표도르의 폐쇄성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방에 대처하는 중소기업 또한 다르지 않다. FTA는 우리에게 큰 무대를 제공해 줄 것이다. 우리 중소기업이 빨리 자신의 한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서 경쟁이 가능하도록 기술력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우리 경제는 지금의 성장 한계를 넘어서는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는 개방의 역사다. 1970년대 과자시장, 80년대 영화시장 개방에서부터 90년대 이후 우루과이 라운드, 문화 개방까지 빗장을 열 때마다 우려의 목소리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새로이 적응하고 한 단계 도약하는 저력을 보여 왔다. 10년 뒤 우리는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송종호 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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