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이 벤처의 목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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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처음 연재할 때와는 달리 지금은 많은 벤처 기업들이 투자나 증자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독특한 아이디어와 기획안을 가지고 사업계획서만 잘 만들어도 손쉽게 거액의 투자를 받곤 하던 것이 그리 오래 되지도 않은 불과 몇 달 전의 이야기다.

그토록 뜨겁던 투자 열풍이 왜 이렇게까지 갑자기 식어버렸을까? 생각해 보면 누구나 걱정했던 일이고, 또, 벤처 기업을 한다는 사람들이나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앞 뒤 안 가리고 달려들어서 만들어놓은,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닌가?

벤처 기업이 전사회적으로 각광받던 시기,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각종 매체가 열을 올리던 그 시기에 한 쪽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정보통신 분야와 관계된 사람들이나 언론이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얘기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이익 창출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단순한 ‘거품론’이 아니라 거액의 투자를 받은 많은 벤처 기업들이 엉뚱한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그 때까지는 투자한 사람들이나 기업이 돈을 잘 벌고 있었나 보다.

뜨거운 투자열풍 왜 식었을까?

벤처 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코스닥과 관련된 것들이다. 자기만의 독특한 기술이든, 이전에 개발된 기술을 우려먹었든, 아니면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졌든 상관없이 투자만 받으면 그 길로 주식 시장에 가서 돈 불리는데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런 벤처 기업들의 경우, 대부분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부풀려서 작성하기 마련이다.

그들에게서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이름을 내걸어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보기는 힘들다. 세계 제패를 얘기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코스닥으로 가기 위한 정치성 발언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언젠가 얘기했듯이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보안 시장이 가장 관심을 끌자 너도 나도 인터넷 보안 사업에 뛰어들어 많은 벤처들이 성공했는데 그들의 사업계획서에 나온 목표치를 더해 본 결과, 십년 이상씩 이 시장에서 일해온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올해 시장 규모의 두배를 넘어서는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아니 유혹하기 위해 ‘목표치’를 제시하기 보다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수치’라고 생각되는 것을 적어넣었던 것 같다.

물론, 투자자들쪽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벤처 기업에 투자를 하는 사람치고 그 기업의 진정한 능력이나 사회적인 가치 등을 고려해 투자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연 이 벤처 기업이 코스닥에 등록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러다 보니 투자 이후에도 얼마나 언론플레이를 잘 하는 지가 평가의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

몇일 전 잘 나가던 한 네트웍 업체의 대표가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사업 수완이 아주 뛰어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국내에 정보통신 인프라가 막 깔리기 시작하던 무렵에 유통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막대한 이윤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의 조짐이 보이자 고의부도를 냈다가 전환사채를 끌어들여 화의를 받아내는가 하면, 한 때 외국의 대형 업체로부터 공급받은 장비를 환차익을 남기고 동남아로 빼돌렸다고 해서 고소를 당하기도 했었다.

작년 하반기 코스닥 열풍이 불면서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경영자의 뛰어난 사업 수단 덕분인지 주식 시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나름대로 개발에 투자하면서 열심히 기술을 쌓아가고 있는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들이 10만원대에도 진입을 못 하던 시기에 그의 회사는 40만원대에 육박하는 가치를 인정받아 놀라움을 던져주기도 했다. ‘하루에 앉아서 10억원을 번다.’는 얘기가 그의 성공신화처럼 얘기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법의 조사를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코스닥 때문이라고 한다. 코스닥에 등록하고 투자자들과 언론을 끌어들이기 위해 엄청난 해외자본의 투자를 받았다고 발표했는데 그것이 조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거론하는 이유가 코스닥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가시키려는 목적은 아니다.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이 없어서 제대로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는 많은 벤처 기업들에게 코스닥은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 벤처의 목표는 오로지 ‘코스닥’ 그것뿐인 것처럼 보인다.

인터넷 시대에 꿈을 이루고자 하는 그들에게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이름을 내걸어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보기는 힘들다. 세계 제패를 얘기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코스닥으로 가기 위한 정치성 발언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오로지 코스닥?

수십년을 세계의 강자로 군림해온 외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무차별 공략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과 비슷한 아이템으로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한국 기업이라는 이름만 내세워 시장의 일부를 차지하려는 생각이라면, 그래서 외국기업과 맞서고 있다는 논리로 가치를 올리려는 생각이라면 고생할 필요없이 외국 기업의 장비나 서비스를 가져다 파는 것이 훨씬 좋은 장사가 될 수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투자에 신중해지고 있어 제대로 된 기술력이나 사업모델이 없으면 투자를 받기도 힘들게 되었다. 앞으로 코스닥에 등록한다면 적어도 경쟁력있는 기업일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코스닥에 등록하고 싶다면 세계 시장을 공격하라!’ 라고 말이다. 세계의 첨단 기술을 만들어가는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들이 나스닥에 들어가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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