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국제금융 소용돌이 눈앞에

중앙일보

입력

영국.독일 등 유럽 각국이 차세대 이동통신의 주파수를 입찰방식으로 속속 매각하고 있는 가운데 낙찰대금을 내야 하는 통신회사들이 막대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낙찰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데다 낙찰을 받는다 하더라도 시설투자와 관련기업 인수.합병(M&A) 등에 천문학적 금액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이 비용조달을 위해 한꺼번에 금융시장으로 몰릴 경우 금리가 치솟고 다른 분야 기업들의 자금조달 기회가 크게 줄어드는 등 국제 금융시장이 상당한 혼란을 겪을 전망이다.

◇ 천문학적 자금수요〓지난 17일 독일의 주파수 입찰에서 전체 낙찰대금은 4백62억6천만달러(약 51조원)였다.

낙찰된 6개사가 독일 정부에 낼 돈은 각 76억~77억달러(약 8.5조원)였다. 이보다 앞서 입찰을 끝낸 영국의 경우 각사의 낙찰대금을 모두 합칠 경우 3백60억달러(약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집계됐다.

유럽 전체로는 1천3백50억~1천8백억달러(1백50조~2백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시설투자 비용으로 이 돈의 50~1백%가 더 들어갈 것으로 보이며, 관련회사를 M&A하는 데도 상당한 자금이 필요할 전망이다.

반면 주파수를 확보함으로써 수익이 생기는 것은 일러야 2~3년 뒤이므로 통신회사들은 현재 필요한 자금의 대부분을 국제 금융시장에서 조달하려 하고 있다.

◇ 자금조달 방법〓자금 조달 방법은 크게 ▶회사채 발행▶증자▶금융기관 차입의 세가지다.

회사채 발행의 경우 현재의 신용등급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고, 채권금리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신용평가회사들은 대부분의 통신회사들이 자금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고 보고 신용등급을 내리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하자 영국의 브리티시 텔레콤은 1백억달러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다 돌연 취소하기도 했다.

증자의 경우에도 문제가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통신회사들의 주가가 비교적 높게 유지된 것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증자로 물량공급이 늘어나면 주가가 하락해 추가 증자가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은행차입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은행들이 위험관리를 위해 동일인 여신한도를 설정해 두고 있어 통신회사들이 추가로 빌릴 수 있는 돈이 얼마 안되는 상황이다.

◇ 시장 불확실성 커져〓국제금융센터는 채권.주식.대출.파생금융상품.M&A 등 모든 면에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통신회사들이 어떻게든 자금을 조달하려고 하면서 자금경색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한 개도국 기업들은 자금을 끌어오기가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주파수 매각으로 목돈을 만지게 된 각국 정부가 대거 국채 상환에 나설 경우 장기금리를 대표하는 국채의 금리가 떨어져 장기 및 단기금리 사이에 역전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 한국은 어떤가〓한국통신.SK.LG 등 3개 컨소시엄은 1조1천1백50억~1조2천억원 정도의 출연금을 써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SK와 LG는 같은 시기에 파워콤과 하나로통신의 인수에도 뭉칫돈을 넣어야 할 상황이어서 더욱 부담스런 입장이다.

LG증권의 정승교 연구위원은 "IMT-2000사업은 향후 5년동안 적자가 불가피해 정보통신업체들이 출연금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 이라고 말했다.

정위원은 "하지만 이들 3개업체는 ▶자금 동원력이 국내에서는 손꼽히는데다▶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자금부담을 덜었고▶출연금의 절반을 향후 10년간 분납할 수 있어 경영에 결정적 타격을 미칠 정도는 아닐 것" 이라고 지적했다.

대우증권의 민경세 연구위원도 "유럽 업체들과 국내 업체들의 사정은 다르다" 고 말했다.

가령 보다폰 에어터치의 경우 영국.독일 등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사업권을 획득하는 바람에 자금부담이 2중.3중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민연구위원은 "유럽은 신규업체에도 IMT-2000의 사업권을 배정하는 바람에 기존 사업자들끼리 출혈경쟁이 불가피했으나 국내에서는 사실상 사업권이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여서 부담이 한결 덜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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