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우 재앙은 정부·농가 합작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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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결국 터질 게 터지고야 말았다. 5일 소값 하락에 항의하는 축산농가들이 ‘청와대 한우 반납’ 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얼마 전에는 사료값 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소 9마리가 굶어 죽었고, 송아지 가격이 삼겹살 한 근 값에도 못 미친다는 한숨 소리도 들린다.

 물론 원인은 복합적이다. 수입 사료 가격이 많이 올랐고, 지난해 구제역으로 위축된 쇠고기 소비도 좀체 회복되지 않고 있다. FTA로 관세가 철폐돼 쇠고기·돼지고기의 수입이 많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번 한우 사태는 근본적으로 농가와 정부가 빚어낸 복합 재앙이다. 축산농가는 돈이 된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입식하는 욕심을 부렸다. 가장 한심한 것은 농림수산식품부다. 적정 두수를 유지하려면 지난해 20만~30만 마리의 한우를 강제로 도태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강제 도태는 한·미FTA 비준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한우 홍보를 통한 소비 확대에 주력했다.

 농식품부는 지난 추석 때 한우 소비가 반짝 늘어나자 반색했다. 하지만 그 이후 한우값이 걷잡을 수 없이 폭락하자 ‘군인들에게 한우를 먹이겠다’는 말도 안 되는 대책만 내놓았을 뿐이다. 걸핏하면 “청와대에서 소를 길러 보라”며 집단 시위에 나서는 농민들도 문제다. 왜 똑같은 비극이 한우나 배추·무 같은 농축산업에만 한 해 걸러 반복되고 있는가. 복잡한 유통 절차로 인해 아직도 값비싼 한우 등심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일반 국민들의 눈에 한우농가의 시위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이번 한우 사태를 축산업 선진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에도 피해는 몇 마리씩 기르는 소규모 축산농가에 집중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대규모 기업형 축산농가들이 1~2년 뒤를 내다보고 헐값이 된 송아지를 무더기로 사들이는 게 현실이다. 올해는 축산업 허가제를 포함한 축산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원년이다. 단기적으로 이번 사태는 국민 세금인 안정화 기금을 투입해 수십만 마리의 한우를 도태시켜 땅에 파묻는 것 말고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강력한 구조조정도 진행해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가 혈세를 들여 축산농가의 이기심이나 농식품부의 정책실패를 설거지해 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