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마다 190만원씩 꽂혀서 대박 꿈꿨는데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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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기자] “땅값 오른 시세차익에 블루베리 판 수익금도 챙겨준다더니 대체 이게 뭔지….”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사는 오모(48)씨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한지 오래됐다. 2년여 전 전북 완주군 운주면 일대 땅을 사들인 이후 최근 1년여 간 가족들의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 신문에서 블루베리 광고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오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오씨는 2010년 초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H영농법인이 파는 땅을 샀다. 정확히 블루베리 농장의 지분을 샀다. H영농은 블루베리 농장이 들어서는 땅의 투자자를 모은다고 했다. 큰 돈 들이는 것이 부담스러운 소액 투자자들을 위한 상품이라고 했다. 땅 3.3㎡를 주식 4주로 환산해 주당 4750원에 샀다. 3.3㎡당 1만9000원에 분양받는 셈이다.

오씨도 땅 투자의 위험성은 잘 알고 있었다. 신문이나 TV에서 기획부동산 등을 조심해야 한다는 뉴스도 많이 봤고 주변에 땅을 잘못 사서 큰 돈을 날린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블루베리 농장은 달랐다.

“땅 투자라는 게 싼 값에 땅 사서 오르길 기다리는 거잖아요. 사실 쉽지 않잖아요. 어디 개발된다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정보만 믿고 투자하기도 어렵고….

근데 블루베리 농장은 달랐어요. 일단 사둔 땅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하고 그걸 판 수익을 매년 챙기다가 어느 정도 땅값이 오르면 판다는 거죠. 만약 땅값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아도 그동안 블루베리를 팔아서 얻은 수익이 있으니까 손해볼 것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수익 챙기고 시세차익도 내고 `일거양득`?

처음에는 아내가 모으던 적금을 깬 1900만원을 투자해 3300㎡(400주)를 샀다. H영농법인이 제시한 수익률은 연 30%. 오씨의 경우 1년에 76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수익금은 분기별로 받거나 연말에 한꺼번에 받아도 된다고 했다. 농장에 직접 내려가본 것이 5번. 2~3년생 묘목이 자라는 것도 봤다. 블루베리를 키워줄 현지 주민들과 인사도 했다.

“H영농이 다 관리한다고 했어요. 현지 주민들에게 월급을 주고 블루베리를 키운다고…. 판매처도 다 뚫어놨다고 했고…. 수익금 배분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서 분기별로 수익금을 받겠다고 했더니 통장에 돈도 잘 들어왔어요. 2월에 투자한 후 한달 뒤에 100만원이 들어왔더군요. 석달이 지난 후인 6월에는 190만원이 들어오고…. 9월에 또 190만원이 들어왔고…. 이거다 싶었어요.”

분기별로 수익금이 꼬박꼬박 들어오자 오씨는 자신감이 생겼다. 집을 담보로 5700만원을 대출 받아 9900㎡(1200주)를 더 샀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투자처가 있다고 적극 알렸다. 처남이 3800만원, 부모님이 5700만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오씨가 처음 투자한지 1년이 지나면서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분기별로 수익금을 준다던 H영농이 연말에 한꺼번에 받는 것이 유리하다며 수익금 지급을 미룬 것. 분기별로 달라고 하자 이런 저런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블루베리 묘목이 자라지도 않았는데 수익금을 어떻게 나눠주는건지까지 생각을 못했던거에요. 팔지도 않은 블루베리 수익금을 받을 셈이니…. 수익금이 아니라 다른 사람 돈을 나눠준거였어요.

제가 투자한 돈은 저보다 앞서 투자한 사람에게 수익금 명목으로 들어간거고, 제가 받은 돈은 저보다 늦게 투자한 사람들의 돈이었던 거죠. 결국 수익금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고 그저 돈 놀이 한 거에요.”

처음 1년간은 수익금 꼬박꼬박 들어왔는데…

H영농과 연락도 잘 안되기 시작했다.

“알아서 연락오고 안부 묻고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잘 안되더군요. 몇 번씩 전화를 걸어야 통화가 되고 하더니 어느 날 없는 번호라는거에요. 사무실에 찾아갔더니 이사 나간지 몇 주 됐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사무실 번호로 통화도 했었는데 번호만 살려놓고 착신전환한거더군요.”

눈앞에 캄캄했지만 오씨는 크게 절망하지 않고 되레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분양하던 업체는 없어졌어도 블루베리 농장은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더 있었다. 월급을 주기로 했던 현지 주민들이 그간 밀린 월급도 받지 못했다며 항의했고 관리할 사람이 없는 블루베리 농장은 순식간에 폐허가 됐다.

“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땅이 없어진건 아니니까…. 애초에 그 점에 안심하기도 했죠. 그런데 파는 것도 쉽지 않더군요. 저와 같은 농장에 투자한 사람만 20명이 넘었어요. 그래도 걱정 안했어요.

계약하면서 법무사한테 수수료 내고 분할 보증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공증이 법적 효력이 없다는겁니다. 지분 등기 위험성이야 알았는데 분할 보증하면 될 줄 알았어요.”

일반적으로 땅을 쪼개서 투자할 경우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재산권을 나눠 갖게 된다는 점이 있다. 한 개 필지를 쪼개는 경우 지분등기를 하게 되는데 등기부에 개별 부동산의 구체적인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고 지분만 표시되기 때문에 땅의 특정 부분이 아닌 전체 땅의 일부분에 대한 권리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공동 소유자 전원이 합의를 해야 땅을 팔거나 건물 등을 지을 수 있다. 또 공동 소유자 중 한명의 지분이 경매로 넘어간 경우 나머지 소유자들도 자기 몫의 부동산을 거래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었기에 오씨는 법무사에서 분할 보증을 신청해둔 것이다. 하지만 가분할 공증을 받아도 법적으로 여전히 전체 땅의 일부분에 대한 재산권만 인정된다.

“나름 신중하다고 생각했어요. 현장도 몇 번을 가봤고 블루베리 묘목도 봤고 분할보증까지 했는데…. 다행이 농장 공동 소유자들하고 뜻이 맞아서 빨리 땅을 팔아서 나누자고 하고 있는데 산다는 사람도 없고…. 산다는 사람이 나타나도 제대로 돈을 나누고 마무리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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