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을 가다] 정부도 'IT 금맥캐기' 삽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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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珠江) 델타 지역은 한마디로 기회의 땅이다.

1980년대 초 홍콩 기업에 이어 일본.대만 기업이 차례로 뛰어들어 황금을 건지고 있다.광둥(廣東)성 어디를 가도 이들의 깃발은 자랑스럽게 나부낀다.그러나 한국기업은 보기가 힘들다.

왜 그럴까.

둥관(東莞)에서 CD롬 드라이브 생산업체인 디지먼을 운영하고 있는 홍콩인 마이클 쳉씨는 "제대로 된 한국 부품업체를 만나기가 어렵다" 고 말했다.

선전(深□)에서 광학제품을 만드는 싱타이(幸臺)유한공사의 장런제(張仁傑)총경리도 "주변에서 한국업체와 거래하는 대만업체를 본 적이 없다" 고 말했다.

그럼 우리 기업들은 어디 있을까.
선전의 삼성SDI와 대우전자, 둥관의 삼성전기, 후이저우(惠州)의 LG전자 등이 눈에 띈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1천5백40만달러(약 1백70억원)의 순익을 올린데 이어 올해도 약 2천8백만달러(약 3백억원)의 순익을 예상하고 있다.
삼성SDI는 올해 약 3천만~4천만달러(약 3백30억~4백40억원)의 순익을 기대하고 있다.
LG도 선전 중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중소기업들은 그리 많지 않다.
종업원 2천2백명의 전자부품 생산업체 광성전자 정도가 두드러질 뿐이다.숫자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우리 업체들의 진출이 사실상 중단돼 있다는 점이다.

선전 한인상공회 오원식 회장은 "선전지역의 기술습득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자만심부터 버리고 광둥을 대해야 한다" 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그러나 우리 업체의 진출을 막는 것은 자만보다 무지다. 정보도, 믿을 만한 파트너도 없는 데다 망한 사례를 숱하게 봐 왔으니 겁이 나서라도 못 온다.

한국 정부의 지역 관할도 모호하다.

선전은 행정적으로 베이징(北京)대사관 관할이지만 무역은 홍콩무역관 관할이었다. 그러다 지난 3월 말 민.관 합동조사단이 선전을 다녀간 뒤에야 겨우 광저우(廣州)무역관으로 관할이 바뀌었다.

17명의 합동조사단이 3박4일 동안 이 지역을 둘러보고 내놓은 결론도 모호하기 짝이 없다.
구체적인 조치는 관할 무역관을 바꾸고, 광저우 무역관에 인원 한 명을 보강한 것이 거의 전부다.집적화를 유도하고, 기술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공자 말씀' 만 있을 뿐이다.

일본 기업들이 만든 '테크노 센터' 같은 '향약(鄕約)조직' 을 우리 기업들도 꾸리면 어떨까. 吳회장은 찬성이었다.단 "우리는 일본처럼 민간단체끼리 향약을 구성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정부가 옵서버 또은 보증인 정도로 참가하는 게 필요하다" 는 조건을 달았다.

오(吳)회장은 우리 상품·기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상설 전시장을 꾸리자는 제안도 했다.이게 어려우면 전용 서버 하나 놓고 우리 상품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라도 열어야 한다고 했다.

선전에서 섬유업을 하는 강박인(姜博仁.54)사장은 "기술과 감독기능만 빼고 모두 아웃소싱하라" 고 충고했다.

공장 세우고, 종업원 고용하고, 판로 뚫고, 정부 상대하는 일을 모두 자기 손으로 하다간 될 일이 없다는 얘기다.

민간 자율로 안되면 정부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끌어야 한다는 게 한인 상인들의 바람이다.초고속으로 발전하는 광둥의 오늘은 우리에게 우물쭈물할 틈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전·둥관〓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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