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아픈 수, 아프지 않은 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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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본선 16강전> ○·궈원차오 5단 ●·박영훈 9단

제2보(15~25)=승부는 타이밍이다. 전쟁도 그렇고 바둑도 그렇다. 때를 맞춰야 한다. 아마 정치도 그럴 것이다. 지금 흑▲ 한 점이 고립돼 있다. 그러나 흑의 박영훈 9단은 15로 하나 밀더니 17로 지킨다. 왜 급한 하변을 놔두고 좌변부터 지키는 것일까. 사실은 이 대목이 바둑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하변이 급하다고 ‘참고도 1’처럼 달아나면 백2의 급소를 얻어맞는다. 이 한 수는 매우 통렬해 좌측 일대의 주도권을 송두리째 내주게 된다. 17은 정중동(靜中動)의 한 수다. 하변은 넓고 흑▲는 가벼워 쉽게 공격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단 17로 지켜놓고 상대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궈원차오 5단도 상황을 파악하고 18로 느릿하게 공격했는데 그렇다면 이제 19로 달아나야 할 때다. 사실 18로 ‘참고도 2’처럼 마구 씌우는 것은 하책이다. 흑2로 달린 뒤 4로 벌리기만 해도 쉽게 산다. 어떤 수는 당하면 뼛속까지 아프고 어떤 수는 당해도 전혀 아프지 않다. 그걸 알아보는 눈이 바로 ‘안목’이다. 22로 뻗어 계속 공격을 엿볼 때 23이 재미있는 수. 돌에 탄력을 붙이려는 박영훈 일류의 감각인데 ‘좋은 타개책’이란 평을 들었다. 25에서 백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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