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로 '콘크리트벽' 허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양시 덕양구 행신1동 햇빛마을 20단지 주공아파트. 부녀회장 이상님(52)씨는 최근 큰 고민을 깔끔하게 해결했다.

음식물쓰레기 수거업체를 새로 정하는 일이었다. 참가희망 업체를 마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모한 결과 예상 밖의 결과에 놀랐다. 가만히 앉아서 수도권 일대 50여 업체로부터 신청을 받은 것.

이씨는 업체들이 홈페이지에 올린 조건을 꼼꼼히 따져 3개 업체를 골랐다. 이어 회원과 업체 면담을 통해 가장 깔끔하게 수거하는 한 업체를 정했다.

뿐만아니다. 한 주부는 홈페이지 덕분에 가계부담을 덜었다. 관리사무소가 아파트 주차난 해소를 위해 1가구 2차량 이상 가구에 대해 주차료를 받기로 한 것을 막아낸 것이다. 관리사무소는 2대 이상 소유 가구에 대해 1대 추가때마다 월 3만원 씩을 더 받기로 했었다.

이 주부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홈페이지에 항의문을 띄웠다. 남편이 배달업을 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승용차 외에 트럭 1대를 더 소유하고 있는데 주차료를 더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소연 했다. 이를 본 10여명의 주민들이 잇따라 비슷한 내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사무소측은 관련 법령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공고 2주일만에 조치를 취소했다. 공동주택관리령에 ''주민 주차료를 관리비에 포함시킬 수 없다'' 는 규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의 1천7백13가구에 사는 주민들은 지난 5월부터 마을 인터넷 홈페이지 덕분에 사는 재미가 훨씬 좋아졌다. 아파트 콘크리트 장벽이 허물어지고 대문이 없는 시골 마을처럼 정이 넘치는 동네로 변하고 있다.

2003동 주부 조은식(42)씨는 남편이 출근하고 두 자녀가 등교하고 나면 버릇처럼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알뜰시장은 언제 열리는지, 이웃에 경사나 흉사는 없는지, 입주자회의에서는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 등등 궁금증을 몇번의 컴퓨터 마우스 클릭으로 해결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그는 ''컴맹'' 이었다. 그러나 마을 홈페이지가 생기자 곧바로 컴퓨터 학원으로 달려가 ''인터넷 과정'' 을 2개월간 배웠다.

"홈페이지가 생긴후 주민들이 앞다투어 자녀나 이웃.학원 등을 통해 보는 법을 배워 이젠 대개 ''인터넷 도사'' 가 됐어요. " 주부 등 마을 주민들은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마을 돌아가는 이야기를 접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대화를 나눈다.

부녀회장 이씨는 "홈페이지 조회건수가 하루 1백건을 넘을 정도" 라며 "다른 아파트 알뜰시장 정보까지 얻어 더 좋은 조건의 알뜰시장도 연다" 고 소개했다. 홈페이지 운영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주민 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자치 정보화 도우미들이 맡고 있다.

이 아파트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아파트 홈페이지 구축을 통해 이웃간 벽 허물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주거문화21국민운동(www.hc21.or.kr)과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하는 한국케이블TV 경기방송 도움을 받았다.

관리소장 이정호(53)씨는 "홈페이지 전담 직원을 1명 두고 아파트의 모든 공지사항을 게시판에 올린다" 고 말했다. 그는 민원 해결방안이나 주민의견조사 결과 등을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준다. 4월분부터는 관리비 내역도 공개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나 부녀회 회원들은 회의가 열릴 때마다 자세한 내용을 공개한다. 연말부터는 사이버 반상회나 주민전자투표 제도도 도입할 계획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