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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 나는 도시 만들기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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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수도 이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도시가 브라질의 브라질리아다. 도시 설계를 시작한 지 불과 4년 만인 1960년 옛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옮긴 것이다. 그 후 지금까지 45년 동안 나름대로 세월의 두께가 입혀졌으나 워낙 엄격한 계획에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기본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도시 설계와 건축을 맡았던 루시오 코스타와 오스카 니마이어는 모더니즘에 입각한 도시 설계와 건물로 브라질리아를 채워 넣었다. 모더니즘에 대한 니마이어의 열정은 종신 브라질 공산당원이었던 그의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어떤 계층에나 평등한 주거와 누구에게나 열린 도시 건설은 그의 신념이었다.

국회가 상징하는 민의를 넘을 수 없다는 뜻에서 지금도 브라질리아의 모든 건물은 국회 건물 층수인 27층보다 높게 지을 수 없다. 주거지역은 모두 번호로 구분한다. 주택은 평수로만 구분될 뿐 계층을 표현하는 어떤 장식이나 치장도 허용하지 않는다. 브라질리아 건설에 참여했던 글래드손 로샤(83) 교수는 이 도시를 "권력 개혁(reformation of power)을 위한 도시 사상의 종합적 결정체"라고 설명했다. 브라질리아는 87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았다. 모더니즘 건축과 도시의 정수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브라질리아 한가운데에 서면 영화 촬영 세트장에 들어간 기분이 든다. 자동차 위주로 도로가 설계돼 여기저기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는 직육면체의 콘크리트 빌딩과 아파트, 보행자가 드문 한적한 도심 등은 미래 공상영화에서 보는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밤거리에는 아예 사람 보기가 어렵다. 공무원 중 상당수는 아직도 가족을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두고 주말이면 비행기를 타고 오간다.

브라질리아대학 건축과 대학원생인 클라우디오 사세는 "리우데자네이루에 가서 취업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수도가 이전한 뒤에도 리우데자네이루는 여전히 과밀하고, 오히려 범죄만 늘어나 문제가 많은 도시지만 "그곳은 적어도 사람 사는 맛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사세는 "니마이어 자신도 이곳을 설계만 했을 뿐 평생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살았다"고 덧붙였다. 룰라 대통령도 주말이면 상파울루에 가서 지내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브라질리아는 건축적으로 뛰어난 빌딩이나 주택을 대규모로 지을 수 있지만 살아 있는 도시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로 꼽힌다.

많은 사람이 "서울은 너무 과밀해 살기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서울에 살까. "직장 때문에" "아이들 학교 때문에" 등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정말 그뿐일까. 무어라 불평해도 결국 서울이 가장 살맛 나는 도시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바로 그 살맛은 많은 사람이 모여 만들어 내는 생동감과 활기 때문은 아닐까.

서울도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개성에서 천도해 만든 새로운 도시다. 서울, 당시 한양은 개성에 비하면 촌스러웠고 태조 자신도 양쪽을 오갔을 뿐 아니라 고려 기득권 계층들은 한양으로 옮겨 오기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600여 년이 지나면서 서울은 사람 사는 맛이 넘치는 도시로 변했다. 이렇게 생물이 자라는 것처럼 도시도 자란다는 의미에서 흔히 도시는 유기체에 비유되기도 한다. 유기체를 가꾸고 키워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건축가를 동원해 멋있는 건물을 짓는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세심한 계획 및 설계뿐 아니라 장구한 세월을 기다리는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신혜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