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홍대리〉작가 홍윤표 과장

중앙일보

입력

"어, 대리가 아니라 과장이시네요."
인사를 나눈 뒤 명함을 살펴보다 농담섞인 한마디를 건네자 쑥스러운 듯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홍과장으로 승진한지 한 2년 됐어요. 조그마한 회사라서 과장이라고 대단한 건 아닙니다. 하하."

최근 샐러리맨들의 애환을 그린 만화 〈천하무적 홍대리〉 두번째 권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작가 홍윤표(33)씨는 그 자신이 올해로 8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샐러리맨이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에서 일하다 3년전 지금의 프랑스계 회사로 옮겼다.

"우라늄을 수입.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주 고객이지요. 우라늄이나 원자력발전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재료를 판매하는 게 제 일입니다."

점심시간 조금 지나 신문사 편집국으로 찾아온 그는 면바지에 티셔츠와 청색 재킷, 그리고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어제 술자리 접대가 있었는데 늦게까지 대단했거든요. 아침에 출근을 못했고 인터뷰 끝나는 대로 출근할 작정입니다."

아마 자동차 속에 구두와 양말을 벗어둔 것이리라 추측했지만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 아니면 슬리퍼 차림 그대로 출근해서 모른 척 앉아있다가 부장에게 들켜 경을 칠지도 모를 일이다.

〈천하무적 홍대리〉 처럼. 평범한 직장인이던 홍씨가 한 문화센터 만화 강좌에 등록한 것은 96년초.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정말 작가가 될 것라고는 생각 안했고요. 어쨌든 만화를 그리고 싶어 등록한 거죠."

홍씨는 이후 1년동안 밤마다 만화와 씨름했다. 무심코 결재서류에 만화를 그렸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사내 전자게시판에 띄운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97년부터 월간 '작은책' 과 독립만화 동인지 '화끈' 등에 연재를 시작했다.

최근엔 참여연대 조세팀과 함께 한국의 조세 체계의 문제점을 정밀 진단한 '홍대리의 세금이야기' 라는 만화를 펴내기도 했다.

〈천하무적 홍대리〉 의 인기 비결은 회사 생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세밀하게 포착하되, 가볍게, 긍정적으로, 밝게 그리는 데 있다.

어차피 힘든 회사 이야기를 꼭 무겁게 전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천하무적 홍대리〉 는 같은 일상 만화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시마 과장〉 같은 일본 만화와 차별화된다.

"조만간 전업작가로 나설 작정입니다. SF물 등 그리고 싶은 만화가 많아요."
"〈천하무적 홍대리〉 는 평생 그릴 작정" 이라는 홍씨는"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홍대리는 계속 대리로 남을 것" 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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