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 경고 받았던 김영승의 시, 연극으로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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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연극 『반성』은 문학과 공연예술의 접붙이기다.

1987년 3월 30일, 스물 아홉 청년 김영승(53)은 시집 『반성』(민음사)을 세상 밖으로 밀어낸다. ‘반성’이란 표제에 번호만 바꿔 단 82편의 시가 실렸다. 욕설과 비속어가 득실대는 시편에 문단은 감전됐다. 이를테면 “서양 미친년 볼기짝 같은 네 유방(‘반성 782’)”과 같은 시어들. 여성의 성기를 일컫는 비속어까지 시어로 둔갑했다. 그러면서 시인은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서정시”(‘반성·序’)라고 우겼다.

 좀 격하긴 해도 이 또한 서정일 테다. 80년대가 난도질한 개인의 마음 풍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니까. 고인이 된 중앙일보 기형도 기자도 당시 이 시집을 주목했다. 그 자신도 시인이었던 기자는 김영승의 유별난 문학적 성취를 기사로 옮겼다. 하지만 시대는 엄혹했다. 문화공보부가 이 시집에 ‘외설 경고’ 조치를 내렸다. 보도 지침에 따라 기사는 끝내 파묻히고 말았다. 시인이었던 기자는 “기사가 누락돼 미안하다”며 거듭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시집 『반성』이 24년 만에 연극으로 부활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이 9~10일 연극원 내 실험무대에서 연극 ‘반성’을 무대에 올린다. 『반성』은 각 시마다 개별 서사가 또렷한 편이다. 연극은 개별 시의 서사를 이야기로 엮었다. 다섯 캐릭터의 시인 김영승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5명의 배우가 번갈아 김영승의 하루를 연기한다.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술집·변소·거리 등이 주요 배경이다.

 김영승 시인은 “외설 딱지 때문에 아웃사이더로 몰린 적도 있었는데 연극으로 재탄생 한다니 마음이 설렌다”고 했다.

 시집을 각색한 만큼 이 연극은 문학과 공연예술 사이에 걸친 모양새다. 시가 곧 대사가 되고, 등장인물은 시를 통해 소통한다. 기획자 박다솔(연극원 3학년)씨는 “『반성』의 시어와 김영승 시인 자체에 주목해 연극을 꾸몄다”고 소개했다.

 반성(反省)이란 돌이켜 살피는 일이다. 김 시인은 “『반성』은 80년대 개인이 말살되는 비극을 노래한 시집이다. 24년이 흘렀지만 개인의 존엄성은 더 처참히 무너진 것 같다”고 했다. 개인성이 축출된 시대, 『반성』을 반성해볼 일이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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