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끝났는데 … 쌀값 왜 오를까, 빗나간 통계가 만든 ‘쌀값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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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농민 최용혁(40·충남 서천)씨는 지난 10월 추수를 끝냈다. 그러나 350여 가마에 이르는 현미 상태의 쌀을 창고에 쌓아둔 채 팔지 않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정부 말만 믿고 쌀을 팔았다가 손해를 봤다”며 “올해도 정부 수급 통계를 믿을 수 없어 일단 출하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지 쌀값이 이상하다. 가을 수확기 직후에는 쌀값이 내려야 정상인데 올해는 오히려 올랐다. 최씨처럼 출하를 미루는 농민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생산지 쌀값은 16만6632원(80㎏ 기준)이다. 연중 쌀값이 가장 비싼 때인 9월 말에 비해 10%, 지난해 같은 시기(13만7524원)보다 21% 올랐다.

 농민들의 출하 지연은 지난해 통계청과 농림수산식품부의 빗나간 쌀 통계 때문이다. 통계청은 지난해 쌀 수확량을 429만5000t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실제는 이보다 25만t가량 적었다. 문제의 발단은 도정을 하기 전인 현미 무게를 완제품인 백미 무게로 환산하는 비율(현백률)이었다. 통계청은 6600여 곳의 표본 지역에서 현미 상태의 쌀 무게를 잰 후 현백률을 적용해 백미 무게를 구하고, 전국 재배면적을 곱해 총생산량을 구한다. 지난해까지 현백률은 92.9%다. 1965년 쌀 생산량 조사를 시작한 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쌀은 일부 건강식 수요를 제외하고는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과거에 비해 벼를 더 많이 깎아 만든다. 현백률을 진작 낮췄어야 하는 셈이다.

 농림부의 수요 예측도 빗나갔다. 농림부의 수요 예측은 426만t으로, 실제보다 5만t 이상 적었다. 돼지고기·야채 가격이 오르면서 쌀 소비가 상대적으로 증가할 것이란 점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게 돌아갔다. 정부 통계대로라면 공급(429만5000t)이 수요(426만t)보다 많아 쌀값이 오를 리 없었다. 대다수 농민은 이를 믿고 지난 겨울 80㎏당 13만원대에 쌀을 팔았다.

 그러나 올해 4월부터 공급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쌀값은 15만원대로 올랐다. 쌀을 창고에 쌓아뒀던 농민은 수입을 더 챙겼고, 정부가 하라는 대로 쌀을 출하한 농민은 손해를 봤다. 이런 ‘학습 효과’가 올해 쌀 출하를 미루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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