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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항아리’는 통일 준비 첫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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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종철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

통일 준비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통일부는 통일 대비 최소비용으로 55조원을 적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남북협력기금에 특별계정을 설치해 남북협력기금의 불용액을 기반으로 삼고 여기에 민간출연금, 정부출연금, 다른 법률에서 정한 전입금 또는 출연금을 합해 통일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통일항아리’다.

 통일부가 적립하려는 액수는 통일연구원 등 여러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추진한 연구결과에 따라 정한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20년 뒤 통일되는 것으로 가정할 때 통일 첫해 드는 비용이 55조원에서 277조원으로 추계됐다. 기존의 통일비용 추정은 독일의 통일비용을 근거로 삼거나 통일 뒤 북한 지역의 경제수준을 남한의 일정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거시적 계량모형을 활용한 것으로, 연구에 따라 100배 이상의 편차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비용추계는 통일 이후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별로 필요한 사업을 선정한 후 항목별 비용을 합계한 항목별 누계방법으로 산출한 것이다. 이런 방법은 통일 당시의 경제상황을 구체적으로 반영할 수 있으며 항목별로 다양한 재원조달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통일재원 적립은 통일 준비의 실질적 실행계획이라는 점에서 정책구상 차원에 머물렀던 지금까지의 통일 논의보다 한 발 나간 것이다. 이것은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고 이에 대한 대내외 협력을 요청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 통일은 구호나 선전이 아니라 실질적인 준비에 의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통일재원을 비축하는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을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다. 통일은 분단으로 인해 남북한이 감당해야 하는 각종 유형·무형의 비용을 해소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단비용은 누적적으로 증가하고 한민족의 도약을 제약하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통일은 우리에게 각종 유형·무형의 통일편익을 제공할 것이다. 다시 말해 통일은 분단비용을 없애고 국가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통일은 갑작스럽게 올 수도 있고, 점진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통일이 다가오더라도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통일의 유형이나 통일하는 방법론을 두고 정치적인 공방에 매달리기보다 차분하게 통일준비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통일국가의 청사진을 구체화해야 한다. 통일 뒤 정치적 안정, 북한 지역의 경제발전, 사회심리적 통합 등을 위한 세심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울러 통일에 대비해 우리 사회의 종합적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통일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정치제도·경제제도의 운영 방식, 사회복지제도·교육제도 등에 대한 종합적인 체질강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통일재원 적립은 통일 준비를 위한 첫 삽을 뜬 것일 뿐이다. 앞으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통일비용의 최소화를 위해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진해야 한다. 동시에 남북한 간 평화정착과 협력을 증대시켜 통일을 향한 대내외적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