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스승·학부모 열정 있으면 학교는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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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사회부문 기자

“체육교사 혼자 애를 쓰고 있더군요. 안쓰러워 100만원을 지원해줬더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2006년 체대입시반을 만든 권태원(40) 교사가 매년 15~20명씩 4년제 체육계열에 진학시킨 인천 가좌고. 황범주 교감은 학교에 부임한 2009년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그때까지 권 교사가 자비를 털어 입시반을 운영해왔던 것이다. 학생들이 ‘아빠’라고 부르는 그는 부모를 대신해 입시철이면 지원 대학까지 따라가 숙소를 잡아줬다고 한다. 공립 가좌고에서 근무기간을 채운 권 교사는 지난해 다른 학교의 육상부 감독으로 오라는 제의를 받았다. 교감 승진에 유리한 자리였다. 하지만 “체대입시반을 보고 입학한 학생을 외면할 수 없다”며 학교에 남았다.

 2년여 재임기간 동안 외부 지원금 수십억원을 끌어와 ‘꼴찌학교’를 선호학교로 바꿔놓은 김동욱(56) 충주예성여고 교장도 벽을 넘어야 했다. 그는 “교장도 퇴임하기 전에 오는 곳, 교사도 쉬었다 가는 곳으로 여기는 학교였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반대 의견을 가진 교사를 ‘형님’이라 부르며 설득했다. 학생과 소통하기 위해 걸그룹 ‘2NE1’의 음악도 들었다. 중앙일보 ‘학교, 바꿀 수 있다’ 시리즈 취재팀이 전국을 돌며 만난 교사·교장·학부모들은 의욕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희생과 고통, 때로는 손해를 감내하며 학생에게 열정을 쏟고 있었다.

 이들이 보여준 ‘열정 바이러스’가 ‘잠자던’ 교단을 뒤흔들고 있다. 보도가 나가자 권 교사에게는 “충북의 체육교사인데 나도 입시반을 꾸려보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한 대학 총장실에선 표창을 주겠다고 나섰고, 진정한 스승의 모습에 감동했다는 시민들의 전화도 답지했다. 젊은 남자교사 5인방이 교과연구회를 꾸려 새 수업방식을 선보인 인천 양지초등학교의 이장근 교장은 “교사들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잘 이끌면 나중엔 변하지 않는 교사가 이상해진다”고 말했다. 열정은 확산된다는 얘기다.

 ‘나는 교사이고 교장이고 학부모다’라고 외친 이들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이제는 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가 힘을 보태줘야 한다. 결손가정 아이들을 목욕시켜 엄마가 돼준 경남 영산초의 한 학부모는 “불평만 하면 변하지 않는다. 학부모도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학교는 바뀔 수 있고, 변화의 주인공은 바로 교사와 교장과 학부모다.

김성탁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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