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FTA 정신’ 계승하자는 이주영, 꿈쩍 않는 손학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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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8일 국회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 민주당이 아닌 한나라당 회의에서였다. 한나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위한 민주당 압박용으로 노 전 대통령 발언을 활용했다. 야권 내 노 전 대통령의 위상을 역이용한 일종의 ‘차도지계(借刀之計·남의 칼을 빌려 상대를 친다는 뜻)’ 전략이었다.

 특히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중앙일보 보도(11월 18일자 1, 5면)를 인용, 다음과 같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읽어나갔다.

 “세계의 역사는 통상국가가 주도해왔다. 개방론자들이 걱정했던 일들은 여러 차례의 개방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한·칠레, 한·EU FTA 다 체결한 대한민국이 미국 말만 나오면 압력이라고 하는 것은 미국 콤플렉스이다. 개방의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볼 이유가 없다. 대화하는 진보, 타협하는 진보가 되어야 한다.”

 그는 이 발언을 소개하면서 “반대 구실만 찾기에 골몰하는 민주당을 상대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라, 국익을 챙기는 정치를 하라, 이성을 회복하라’고 충고하고 촉구해본들 이제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이 정책위의장의 말이 끝나자 김정권 사무총장은 “세계무역기구(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 (반대론자들이) 외국 노예가 될 것이라고 선동했지만 결국 사실이 아니었다”며 “이 말은 제 말이 아니고 노 전 대통령 말씀”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사무총장은 “안희정 충남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등 참여정부의 핵심인사들이 한·미 FTA를 민주당의 책임하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분들의 주장에 민주당 지도부가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요지부동이었다. 손학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FTA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정부가 국회에 비준을 요구하기 전에 (미국과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대한) 재협상에 나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송 시장과 안 지사를 겨냥해 “민주당 소속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잘못된 인식을 드러내면서 당의 FTA 전선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자마자 FTA의 문제점을 정부에 요구한 것과는 대단히 상반된 태도”라며 “젊은 자치단체장들이 다시 한번 FTA 본질을 꿰뚫어보고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나라당에 “다음 달 2일 예산안을 처리한 뒤 한·미 FTA 비준안을 따로 다루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는 “한마디로 말이 안 되고 한나라당을 바보로 아는 것”이라며 “모든 제안을 민주당이 거절한 이상 처리 시간을 놓고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김경진·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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