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보다 동독 어린이가 천식 적었던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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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소아과 의사인 에리카 폰 무티우스는 독일 통일 직후인 1990년대 초 동·서독 어린이의 건강상태를 비교했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서독 어린이보다 지저분한 환경에서 자란 동독 어린이에게 천식과 알레르기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저분한 환경에서 자란 동독 어린이가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렸던 것이다. 이른바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의 한 사례다.

 80년대 말부터 제기된 위생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는 꾸준히 축적되고 있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시골 농장에 살았다거나 농촌에서 태어난 아이가 천식이나 아토피피부염에 덜 걸린다는 것들이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12일 한림대 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소연 교수가 비슷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도시(서울)와 소도시(정읍시), 시골(정읍시 인근) 등 3개 지역의 9~12세 어린이 17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천식·알레르기비염·아토피피부염 모두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소도시보다는 대도시에서 발병률이 높았다.

 이달 초 사이언스데일리가 보도한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아기 때 직장(直腸·곧은창자)에서 발견되는 세균의 숫자가 적으면 학교에 다닐 무렵 알레르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증가했다. 연구팀은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난 어린이는 알레르기 질환에 많이 걸리는 이유도 설명했다. 엄마 배 속에서 무균상태로 있던 아기는 정상적인 출산의 경우 엄마의 직장에 있는 세균에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하지만 제왕절개의 경우 전혀 세균에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바깥세상에 나와 한꺼번에 여러 세균을 접하기 때문에 각종 알레르기 질환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세균이 처음 아기의 몸에 들어가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나중에 들어올 세균의 종류까지 정해지고, 평생의 건강까지 결정되는 셈이다.

 실제로 올 4월 과학전문지 네이처에는 이를 실증하는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 연구팀의 논문이 실렸다. 연구팀은 세계 각국의 성인 154명을 대상으로 장내 세균의 구성비, 즉 세균총(細菌叢)을 분석한 결과 많이 나타나는 세균의 종류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됐고, 그에 따라 많이 만들어지는 비타민의 종류도 달랐다. 사람마다 영양소와 약물의 흡수에 차이가 나는 것도 세균총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균총의 유형은 국적·성별·체중·나이·건강상태 등과는 무관했다. 사람의 체질을 특성에 따라 태양인·태음인 등 네 유형으로 나누고 그에 따라 병을 치유하는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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