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당은 대통령 제안 받아 FTA 표결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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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국회를 찾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당부했다. 어렵사리 이뤄진 민주당 지도부와의 만남에서 대통령은 ‘국회가 FTA 비준하면 책임지고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재협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ISD는 야당이 폐지를 주장해 온 조항이다.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 ‘책임지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이제 민주당이 화답할 차례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 자리에서 ISD에 대한 재협상을 넘어 ‘폐기’를 주장했다. 기존의 입장 그대로다. 대신 손 대표는 대통령의 제안을 오늘 의원총회에 전달하고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의원총회에 기대를 걸어본다.

 어제 대통령의 제안은 내용만으로 보자면 이미 지난달 말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대표가 정부와 합의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협상에서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요구를 거의 대부분 수용하면서 반대하는 정부대표를 설득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ISD 문제에 대해서는 ‘협정 발효 후 3개월 이내에 양국 간 협의를 한다’는 조건부로 합의문이 완성됐다. 통상 이 정도면 야당이 승리한 합의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합의안이 다음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된 가운데 지도부의 강경입장에 따라 부결됐다. 지도부가 내년 총선·대선 과정에서 야권통합 후보를 내기 위해 민노당 등 강경 야권의 눈치를 보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지도부의 무리한 강경론은 당내 온건파의 반발로 확인된다. 민주당 온건파 다수가 FTA 통과를 위한 절충안을 내놓았다. 이들은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몸싸움 없는 비준’을 위한 서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내놓은 절충안의 골자는 ‘ISD에 대한 양국 정부의 협의 약속’을 전제로 ‘FTA 비준안을 표결처리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자명하다.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다수 온건파의 의견을 수렴해 몸싸움 대신 반대표를 던지는 당론을 정해야 한다. 대신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함께 정부에 ‘ISD 재협상’을 요구하고, 정부는 대통령이 약속한 것처럼 미국을 설득해 재협상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