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버핏세’ 도입 주장은 포퓰리즘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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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울시장 선거 이후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이 갈수록 기세를 더하고 있다. 경기 회복이 부진한 가운데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내년 선거에서 표심의 향배가 부자 과세와 복지 확대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다. 야권은 기왕에 주장했던 포퓰리즘 공세가 먹히고 있다는 생각이고, 여당도 이에 뒤질세라 포퓰리즘에 편승하지 못하면 내년 선거에서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제기한 이른바 ‘버핏세 도입’이다. 정 의원은 “버핏세는 어차피 총선에서 야당이 한나라당을 부자 정당으로 몰면서 제기할 문제”라며 “수세적으로 논의하느니 차라리 한나라당이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버핏세란 미국의 주식 거부(巨富)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제기한 ‘부자 증세론’에서 비롯됐다. 버핏은 미국의 금융부자들이 봉급생활자보다 소득에 대한 세부담 비율이 낮다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에서는 일제히 우리나라에서도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급기야 한나라당에서도 이 같은 주장에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막연히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미국의 ‘버핏세’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거니와, 설사 여러 가지 형태로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높이더라도 세수 확대에 기여하는 효과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버핏이 제기한 ‘버핏세’는 미국에서 자본이득에 대한 세율이 근로소득세율보다 낮은 것을 시정하자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자는 것이 아니다. 현재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이른바 ‘부유세’나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 인상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소득 상위 20%가 세수의 90%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 이 판에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높인다고 세수가 더 늘어나기보다는 투자의욕과 근로의욕을 꺾고 저축 동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더 크다. 정치권은 더 이상 정략적으로 세금 문제를 거론하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