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프랑스 생활상, 자잘하게 담겨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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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사진을 찍고 싶은데요."
"스파이더맨처럼 벽에 달라붙을까요?"

예리한 눈으로 사진 찍을 장소를 물색하던 소설가 김영하 님은 까페 밖 유리창에 몸을 기댔다. 유리창 넘어 비칠 듯 말 듯 아련하게 보이는 김영하 님. 상상력이란 얄팍한 기발함이 아니라 미학적 아름다움과 통한다는 사실을 김영하 님은 그의 소설만큼이나 몸소 보여준 셈이다.

그이의 손에는 나온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책,〈마르탱 게르의 귀향〉 제먼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번역, 지식의풍경)이 들려 있었다.

우리에게는 제라드 드 빠르디유가 주연한 〈마틴 기어의 귀향〉, 리차드 기어의〈써머스비〉로 더 잘 알려진 이야기.

16세기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엄연히 이 책은 역사책이다. 밀양의 '아랑 전설'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은〈아랑은 왜?〉라는 독특한 소설을 마이클럽닷컴에 연재하고 있는 김영하 님의 요즘 관심 분야는 역시 역사 쪽인가 보다.

"이 소설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실화를 아주 소프트하게 서술한 역사책이에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사라진 지 10년 만에 나타난 마르탱 게르의 진위 여부를 놓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죠. 그 당시에는 사진도 없고 지문 감식법도 없었기 때문에 아내도 긴가민가할 정도로 사람의 기억이란 아주 부정확한 거였죠.

그러나 이 책에는 영화에서 그리지 못한 그 당시 프랑스인들의 생활상이 아주 자세하게 나옵니다. 마르탱 게르는 토지를 임대하는 등 3년 동안 마을에서 개혁을 추진하는데 프로테스탄트 계급은 그가 진짜라고 주장하죠. 반대로 보수적인 농민·귀족 계급은 그가 가짜라고 합니다. 즉 다양한 계급이 이해 관계에 따라 충돌하는 모습을 마르탱 게르가 진짜냐, 가짜냐 하는 해프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김영하 님은 며칠 전 한 인터넷 서점에서 40만원 어치의 책을 한꺼번에 주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스 채 전달된 책 무더기와 2만원 짜리 구입권을 받아들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독자 뒤통수 때리는 재미로 소설 써요"라는 당돌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모양이다.

몇 년 후 어느 소설가가 "밀양의 '아랑 전설'은 겁탈 당한 후 구천을 떠도는 아랑 때문에 부임 사또마다 죽어 버리는 이야기죠. 이 '아랑 전설'에서 힌트를 얻어 16세기 우리나라 생활상을 자잘하게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소설책이 김영하 님의 〈아랑은 왜?〉입니다"라고 〈아랑은 왜?〉를 추천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오현아 Books 기자(perun@joins.com)

▶김영하 님이 권한 또다른 책
마테오 리치의 기억의 궁전
1587 아무 일도 없었던 해

▶이 글에서 이야기한 관련 사이트
김영하 님 홈페이지
제라드 드 빠르디유
〈마틴 기어의 귀향〉
리차드 기어
〈써머스비〉
마이클럽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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