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 만난 블룸버그 “김치 좋아해 … 한국어 배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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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26일(현지시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사회자 케빈 김 맨해튼 커뮤니티보드 위원.

“김치 먹고 죽은 사람 봤습니까?”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 미국 뉴욕시장이 대뜸 물었다. 김치는 익히는 동안 냉장고 바깥에 둘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위생검사 때 자주 걸린다는 한인동포의 지적에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좌중엔 폭소가 터졌다.

그제야 블룸버그는 “뉴욕시엔 다양한 커뮤니티가 공존하다 보니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규정이 있을 수 있다”며 “나도 김치 애호가의 한 사람인 만큼 김치에 맞는 위생규정을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블룸버그 시장이 시장직 10년 만에 26일(현지시간) 뉴욕시 원조 한인타운인 플러싱의 퀸즈도서관에서 처음 한인커뮤니티와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타운홀 미팅은 미국 정치인이 지역주민과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즉석에서 개선책을 제시하는 행사로 미국식 직접민주주의의 대표적 사례다.

특히 이번 타운홀 미팅은 시장실에서 한인 1.5~2세가 주축이 돼 만든 한인커뮤니티재단(KACF)에 먼저 제안해 이루어졌다. 그동안엔 타운홀 미팅을 주로 지역단위로 개최해왔으나 이번엔 한인커뮤니티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이날 행사엔 16명의 뉴욕시 국장이 배석했다. 질문이 나오면 블룸버그 시장이 큰 방향의 정책을 설명한 뒤 구체적인 대책은 담당국장이 직접 설명하도록 했다.

플러싱 지역의 무분별한 청과 노점상 때문에 한인 상인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에 그는 “311번으로 불법 노점상을 신고하면 즉시 시정하겠다”고 즉석에서 답하기도 했다. 한인 상권인 노던블러바드 지역의 주차위반 단속이 너무 심하다는 지적에도 블룸버그는 규정 개선을 약속했다.

 언어장벽 해소를 위한 시정부의 대책을 묻는 질문도 많았다. 한인민권센터 변호사는 “시정부가 한인을 위한 통역·번역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블룸버그는 “뉴욕시엔 180여 개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며 “재정 형편상 지금은 많이 쓰는 언어 8~9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플러싱처럼 한국계 미국인이 많은 지역은 개선책을 마련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는데 다음엔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지영석 KACF 창립이사는 “블룸버그 시장이 16명의 국장과 함께 11개의 질문에 성의껏 설명한 건 인상적”이라며 “한인커뮤니티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새삼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KACF를 비롯한 뉴욕한인회, 뉴욕가정상담소, 뉴욕한인변호사협회, 뉴욕한인봉사센터, 민권센터 등 한인단체 관계자와 지역주민 300여 명이 방청석을 꽉 채웠다.

뉴욕=글·사진 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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