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복판서 낯선 사람 40명이 ‘인’자로 기댄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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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 뉴욕 중심가 타임스스퀘어에서 서로 모르던 관광객과 뉴요커가 15분 동안 상대에게 어깨를 빌려줬다. 오른쪽 선글라스를 쓰고 서있는 사람이 사진작가 천경우씨.

25일 오후 1시(현지시간) 미국 뉴욕 중심가 타임스스퀘어. 하루 평균 36만여 명이 지나는 ‘세계의 교차로’인 이곳은 잠시 시간이 정지한 듯했다.

 생면부지의 뉴욕 시민과 각국 관광객이 하늘색 벤치에 마주보고 앉았다. 피부색·언어·국가·종교를 초월한 40여 명이 가방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껐다. 서로의 머리를 상대의 오른쪽 어깨에 기댄 후 15분 동안 눈을 감고 입도 다물었다. 그리고 각각 점(點)이 된 그들은 ‘사람 인(人)’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의 맥박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내면으로 빠져들었다.

 독일 브레멘에 사는 사진작가 천경우(42)씨가 25일 타임스스퀘어에서 연 퍼포먼스 ‘버서스(Versus)’의 풍경이다. 2007년 서울에서 시작된 ‘버서스’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르투갈 리스본을 걸쳐 이날 뉴욕에 상륙했다. 천씨가 타임스스퀘어 공공미술 프로그램에 초대된 것. 이날 퍼포먼스에는 미리 행사에 등록한 이들과 즉석에서 참가한 행인들이 두루 참여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나온 천씨는 현재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시간 노출로 사물의 윤곽을 흐리게 포착하는 기법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날 메가폰을 들고 퍼포먼스를 지휘한 그는 “소셜네트워크의 발달로 현대인이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줄었다. 지루한 공간도 없어져가고있다. 이번 퍼포먼스는 몸만 갖고 나 스스로와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타임스스퀘어는 ‘익명의 섬’ 같다. 인종·국적·종교를 망라한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서 누구도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1시, 5시 두 차례 열린 퍼포먼스에는 총 78명이 참가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뉴요커 프랭크 코널리는 “늘 타임스스퀘어를 지나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이방인과 소통하고, 도시의 소리를 흡수하면서 마치 명상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숙희 뉴욕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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