面牆<면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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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호 27면

“홍문관(弘文館)에 올라온 상소에 신(臣)이 배우지 않아 장면(牆面)하고, 나이가 적어 경험이 적고 물정에 어둡다고 합니다. 이 말이 공론이라면 사직하기를 청합니다.” 연산(燕山) 6년(1500) 우부승지 신수영(愼守英·?~1506)이 주위의 흉흉한 평판에 분개해 왕에게 하소연했다. “비록 학술이 있더라도 장면한 사람만 못한 사람도 많다. 사직하지 말라.” 왕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연산군일기의 한 부분이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여기 나온 ‘장면’은 ‘담벼락을 마주 대하고 선 것같이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견문이 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뜻의 ‘면장(面牆)’과 같은 말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배운 사람은 곡식과 벼와 같고, 배우지 않은 자는 쑥대와 잡초 같다. 곡식이여, 벼여! 나라의 좋은 양식이요. 온 세상의 보배로다. 쑥대여, 잡초여! 밭 가는 이가 미워하고 싫어하며, 김매는 자는 수고롭고 힘이 드는구나. 후일 면장(面牆)하여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한들 그때는 이미 늙어버린 후일 뿐이다.” 동양의 고전 명심보감(明心寶鑑) 근학편(勤學篇)에 나오는 송(宋)나라 휘종의 가르침이다.

면장이란 말의 용례는 공자(孔子)의 논어(論語) 양화(陽貨)편에서 유래한다. 공자가 아들 백어(伯魚, 이름은 孔鯉)에게 물었다. “너는 (시경(詩經) 첫머리에서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사례들을 노래한 부분인)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공부했느냐? 사람이 만일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으면, 담벽에 얼굴을 마주 대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其猶正牆面而立也與).”

‘알아야 면장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학식이 있어야 행정 단위 면의 장관인 면장(面長)이 된다는 뜻으로, ‘출세하려면 공부하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다. 여기서의 면장은 담벼락을 마주한 듯 견문이 적은 상태를 면(免)한다는 ‘면면장(免面牆)’을 줄인 면장(免牆)이란 뜻이다.

서울시장 선거전이 막바지다. 유력한 후보들의 여론조사 지지율 추이가 엎치락뒤치락 호각지세(互角之勢)요, 막상막하(莫上莫下)라고 한다. 유권자는 면장(面牆)이 아닌 시장(市長)을 뽑는 선거임을 잊어선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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