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나라 망신시킨 성추행 미인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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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에서 열린 국제 미인대회에 참가한 외국 여성이 성(性) 상납을 요구받고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BBC와 데일리 메일 등 영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달 서울·부산·대구 등에서 개최된 ‘미스 아시아퍼시픽 월드’ 대회에 웨일스 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여성이 주최 측 인사로부터 이런 몹쓸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주장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범죄일 뿐 아니라 국제적 망신거리다. 최근 유럽과 미국·호주 등 세계로 번지는 한류 열풍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피해 여성과 ㈜엘리트아시아퍼시픽그룹 등 주최 측 주장이 엇갈린다. 주최 측은 세계 대회에서 성 상납 요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문화적 차이에서 온 오해라고 주장한다. 참가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한국에서처럼 등을 두드리고 어깨를 쓰다듬는 정도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외국 여성들이 불쾌하게 여기는 성추행이 용납되는 듯이 변명하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힘들다. 영국뿐만이 아니다. 캐나다 참가자 등 다른 여성들도 대회 관계자가 어깨·허리를 만지는 등 추행했다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가.

 경찰은 철저한 수사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더욱이 피해 여성은 영국 언론 인터뷰에서 대회 관계자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돈을 주고 사건을 무마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 대해서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 미인대회 주최 측과 경찰이 조금이라도 잘못된 일이 있다면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 한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없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영국 언론에는 정정보도를 요청해야 한다.

 이번 미인대회는 운영도 미숙했다. 참가 비용 제공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식사·숙박 불편으로 참가자들의 불만이 적잖았다고 한다. 일부 참가자가 대회를 포기하고 중간에 돌아가거나 시설·홍보 부족으로 대회장 객석을 채우지 못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래저래 나라 망신을 시킨 꼴이다. 차제에 국제적 공신력을 갖추지 못한 기관·기업들이 ‘세계 대회’ ‘월드 대회’ 운운하며 설치지 못하도록 방도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