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허샤이저 마이너리그서 구슬땀

중앙일보

입력

오렐 허샤이저(41).

18년동안 메이저리그서 뛰며 2백5승 1백47패(메이저리그 사상 2백승 이상 투수는 96명)을 올린 거물투수.

지난 88년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면서 사이영상을 수상한 대투수.

59이닝 연속무실점의 대기록과 함께 ‘불독’이란 별명이 말해주듯 자타가 공인하는 승부욕이 강한 투수.

박찬호가 처음 미국땅을 밟았을 때부터 최근까지 따뜻한 조언과 함께 프로로서의 정신력을 가르쳤던 박찬호의 스승이자 형님이었던 투수.

지난해 뉴욕 메츠를 떠나 올해 다저스로 옮겼을 때 박찬호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존경하고 따랐던 투수.

그런 그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지난 주 허샤이저는 마이너리그 클래스A 샌 버나디노의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서있었다. 그는 이날 랭카스터를 맞아 6이닝동안 4안타 1자책점을 기록했다.

18년 베테랑인 그는 계약상으로 구단이 내린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군말없이 마이너리그행을 택했다. 스스로 자신의 발전을 위해 일정한 단련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샤이저는 올시즌 5월9일 이후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지난 4월19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경기서 1과 3분의1이닝 동안 4개의 몸맞는공을 던져 메이저리그 최악의 기록을 냈다. 더구나 올시즌 7번등판 1승2패(방어율 10.70)로 성적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허샤이저의 마이너리그행은 실제 그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에 허샤이저가 샌버나디노의 유니폼을 입고 고개를 숙이고 굳은 표정으로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덕아웃을 나오는 장면이 실렸을 때 그를 아끼던 팬들은 가슴 뭉클한 충격을 받았다.

41세 대투수의 마이너리그행.

일부에서는 미프로야구의 냉혹함을 이야기한다. 한시절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대투수가가 마이너리그행이라니.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허샤이저의 마이너리그행을 나이를 뛰어넘는 투혼과 정신력의 승리로 본다. 어떤 투수가 자신의 명성과 과거를 접고 용기있게 마이너리그행을 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를 아끼는 팬들은 진정한 프로선수로서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허샤이저가 다시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등판, 진정한 ‘인간승리’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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