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북경에 부는 남북 화해의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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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국주재 한 남미 외교관의 송별연회에서 한국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이 북한의 주창준(朱昌駿)대사와 마주쳤다. 지난해 10월 1일 중국 건국 50주년 연회 석상에서 부닥친 이후 두번째다.

당시 한국 외교관이 인사를 건넸지만 朱대사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인사와 악수를 나눈 것은 물론 지난해 창안(長安)가에서 싼리툰(三里屯)으로 옮긴 한국대사관과 날씨를 화제로 담소를 나누기까지 했다. 불과 반년 만의 대변화다.

비슷한 시기에 베이징 외교단 관련업무로 북한대사관을 찾았던 한국의 한 외교관도 직원들의 부드러운 태도와 따뜻한 인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데다 경계와 감시의 눈초리까지 보였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베이징 시내 야윈(亞運)촌의 유경식당이나 차오양(朝陽)구 잉빈(迎賓)로에 위치한 해당화 등 북한 음식점 여종업원들도 최근엔 한국 손님들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물론 문밖에까지 전송나오기도 한다.

함께 간 아이들에게 덕담을 하고 함께 놀아주는 경우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대사관에 파견된 무관들까지 서로 자리를 함께 했다는 점이다.

4월말 베이징의 한 음식점에선 한국과 북한.월남.몽골.라오스의 5개국 무관들이 저녁 모임을 열었다.

한국 무관이 참석한다면 자리를 피하던 북한 무관들도 이번 만큼은 태도가 달랐다.

무관이라는 신분의 특수성 때문에 이번 5개국 무관들의 회동은 베이징 외교가에선 하나의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이징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북화해 현상의 진원지는 물론 지난 4월 10일 남북한 정상회담 합의발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베이징에선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단순히 제스처나 상징적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이젠 한국을 파트너로 인식, 협력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오늘 베이징에 모래바람이 불면 내일은 서울이 황사(黃砂)에 휩싸이곤 한다. 베이징에 부는 화해의 바람이 한반도로 이어져 끊임없이 남북으로 불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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