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모성애는 의무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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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신여성 나혜석은 결혼 1년 만에 첫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빠른 임신, 고통스러운 출산과 육아의 심경을 ‘모(母) 된 감상기’로 발표한다(『동명』, 1923.1.1~21). “‘나열(羅悅: 나혜석의 딸)의 모(母)’는 ‘모 될 때’로 ‘모 되기’까지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이상한 심리 중에서 ‘있었던 것을’ 찾아 여러 신식 모들께 ‘그렇지 않습디까, 아니 그랬었지요?’라고 묻고 싶다”는 게 이 글의 취지였다. 즉 그녀는 ‘엄마’로서 겪는 여러 감정을 다른 엄마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매우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입덧을 하면서도 자신이 임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했다. “그런 중에 뱃속에서는 어느덧 무엇이 움직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은 나는 몸이 오싹해지고 가슴에서 무엇인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즉 나혜석은 임신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가끔은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기쁜 적도 있었지만, 촉망받던 예술가로서의 인생이 갑작스러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헝클어져 버린 것에 대한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이 더 컸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녀는 여성이라고 해서 임신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모성애가 생기는 것은 아니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글이 발표되자 지식인 남성들은 반발했다. “원래 임신이라는 것은 여성의 거룩한 천직이니 여성의 존귀가 여기 있고 여성이 인류에게 향하여 이행하는 최대 의무의 한 가지인 것을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라며 나혜석의 임신이나 육아의 의무를 방기하려는 태도를 비난했다(백결생, ‘관념의 남루를 벗은 비애’, 『동명』, 1923.2.4). 그러자 나혜석은 이에 자신의 감상기가 임신과 출산을 한 여성들의 솔직한 감정이라고 반박한다. 그래서 자신의 글이 분명 일부 여성들에게는 공감을 얻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한다(‘백결생에게 답함’, 『동명』, 1923.3.18).

 10월 10일이 ‘임신부의 날’이었다고 한다. 어떤 여성들은 임신을 매우 기뻐할 수도 있지만, 어떤 여성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 여성이더라도 어떤 순간엔 임신을 무척 감사할 수 있지만, 어떤 순간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임신이란 여성에게 여러 가지 상황과 감정을 야기하는 엄청난 변화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모성애는 본능이나 의무가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보호할 책임은 임신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