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가벼움 - 그 오묘한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5면

<본선 32강전> ○·원성진 9단 ●·리쉬안하오 4단

제5보(53~63)=흑▲로 공격하자 백△로 응수했다. 깜짝 놀랄 동문서답이다. 흑▲는 리쉬안하오 4단의 회심의 일착이었으나 원성진 9단이 못 본 척 외면해 버리자 분위기가 단박 이상해진다. 흑▲가 허공을 가른 칼질이란 말인가. 도대체 백이 위쪽을 손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까. 답은 ‘가벼움’이다. 백◎ 두 점은 다 잡히지도 않지만 반 토막은 언제든 죽을 운명이다. 흑이 A로 두면 절반은 죽은 목숨이기에 삶에 연연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생각보다 가벼운 돌이 되는 것이다.

 리쉬안하오는 고심 끝에 53, 55로 차단해 온다. ‘참고도’ 흑1의 포위가 가장 쉽게 떠오르는 수지만 백2가 뻔히 보인다. 게다가 백B로 나오는 수도 발등의 불이 된다. 백의 노림을 견제하면서 좌변 공격을 이어가려는 고심이 53, 55에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수순들이 꼭 좋은지는 의문이라고 박영훈 9단은 말한다. 원성진 9단은 기회를 틈타 54, 56으로 하변 백집을 뚱뚱하게 부풀리더니 57을 보자 비로소 58로 달아난다. 백의 유격전술이 흑에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리쉬안하오는 버럭 화를 내듯 59로 두 점머리 급소를 힘차게 두드렸으나 원성진은 한술 더 떠 60으로 끊어버린다. 60의 초강수가 구경꾼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 [바둑] 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