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발표 재계반응] '충격·당혹' 오너퇴진 파장에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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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주영 명예회장 3부자의 전격 퇴진 발표에 주요 기업과 경제단체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면서 초유의 '오너 일괄 퇴진' 이 몰고 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다수 기업들은 이번 조치가 현대 사태의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다른 기업들까지 획일적으로 확산.적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삼성은 "鄭회장 일가의 퇴진 발표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의 경영 능력을 시장이 높게 평가해 기업 가치가 타 기업보다 높게 나오는 것 아니냐" 며 "문제는 오너.비(非)오너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 능력" 이라고 말했다.

LG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도 "누가 경영을 하느냐보다 경영을 얼마나 건실하고 투명하게 해 시장의 신뢰를 받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냐" 고 말했다.

손길승(孫吉丞)회장 등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미 갖춘 SK그룹 관계자는 "경영 일선에서 무조건 물러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닌 듯하다" 며 "퇴진 의사를 밝힌 鄭회장 일가가 대주주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어떻게 갖추느냐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향후 지배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중견그룹들 역시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H그룹의 상무급 인사는 "한국적인 기업 문화에 오너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일선에서 경영을 지휘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만큼 퇴진 이후에 鄭명예회장 부자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할 것" 이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전경련.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들도 현대 발표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경련은 "현대의 오너 퇴진은 현대의 판단사항인 만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전적으로 개별 기업의 소관에 맡겨야 할 것" 이라고 밝혔다.

대한상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 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이번 사태가 구조조정에 힘쓰고 있는 유능한 오너 경영자까지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리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 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도쿄 한.일 재계회의에 참석 중인 박상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은 "대그룹 오너의 독단 경영으로 국가 경제가 멍들어서는 안된다" 며 "현대그룹 오너의 퇴진은 재벌개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제프리 존스 주한미상의 회장은 "기업 오너가 책임 경영을 다한다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는 매우 바람직하다" 면서도 "鄭회장 일가가 대주주로서의 권한 외에 실제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한편 함께 하는 시민행동(대표 이필상.정상용)은 이날 성명을 내고 "鄭명예회장 일가의 퇴진을 환영한다" 며 "여타 기업들도 지배구조 개선 등 개혁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하고, 정부는 개혁 미비 등 책임을 지고 경제 각료를 재편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이유야 어쨌든 갑작스런 오너 일가의 퇴진으로 현대 그룹에 자칫 일시적으로나마 경영 공백 상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며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현대 그룹이 비중이 매우 큰 만큼 조속하고 안정적인 경영권 재 정립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관계자는 "이번 현대 조치를 계기로 정부의 재벌 개혁 압박이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며 "정부는 개별 기업마다 상황과 여건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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