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지 않는 시대의 흉터 그려낸 중단편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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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위화(余華). 그는 과연 '문림(文林)의 고수(高手)'이다.
이문구 선생의 격찬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위화의 중·단편집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와 〈내게는 이름이 없다〉를 기획·진행하면서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중국의 젊은 작가 위화(余華)와의 만남은 2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푸른숲 문학담당으로 입사한 지 며칠 안되던 어느날 〈허삼관 매혈기〉 생경한 제목의 장편소설 원고가 책상 위로 날아들었다.

소설은 허삼관이라는 한 가난한 노동자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홉 차례에 걸쳐 피를 파는 사연을 기둥 줄거리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단찮은 생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인생 유전 속에 중국 현대사의 온갖 파란과 물살을 무리없이 수용하는 작가의 녹록치 않은 공력이 나른하게 원고를 훓어보던 편집자를 퍼뜩 일깨웠다.

작품 발표순으로 보면 이미 번역된 두 권의 장편소설보다 훨씬 앞에 놓일 위화의 중·단편집을 기획한 것은 그 직후였다.

1983년 등단한 이후 그가 주로 '선봉파'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80년대 후반에 쓰여진 이번 작품들에는 물론 장편소설에서 보여준 굵직한 스토리라인은 없다.

짤막한 삽화들을 통해 다종다양한 인간들의 우스꽝스럽고도 한심스런 인생을 한 켜 한 켜 드러내주는 형식이다. 등장하는 사람들도 허술하고 어처구니 없기 짝이 없다.

겁쟁이라는 친구들의 놀림을 보상받기 위하여 제 아버지의 불행을 충동질해 결국은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아이(〈난 쥐새끼〉), 제 친구와 놀아난 마누라의 몰래카메라 비디오를 보면서 황색비디오에는 원래 음악이 없는 걸까를 궁금해하는 사내(〈왜 음악이 없는 걸까〉), 개와 한식구로 살다가 단 한번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동네 건달들에게 속아 분신처럼 여기던 개를 식용으로 넘겨주고 마는 사내(〈내게는 이름이 없다〉) 등등.

그러나 단 한 권의 책에 무려 17편이 단편이 수록될 만큼 길지 않은 분량의 작품들을 '키득키득, 푸하하하,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슬픔이 목줄기를 타고 올라온다.

작가의 따스한 눈길과 풍성한 이야기 솜씨로 빚어진 그 하잘것없는 인생들을 통해 결국은 우리 삶의 지나온 자리와 '지금, 여기'의 진상(眞相)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소설집을 진행하면서 "소설은 위화 당신에게 있어 무엇인가?" 라는 아주 '상투적인'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위화는 이렇게 대답했다.

"소설은 제게 있어 기억을 환기시키는 작업이지요. 이것은 기껏해야 사사로운 개인사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한 시대의 형상일 수도, 아물 수 없는 흉터일 수도 있습니다. 한평생 글을 쓰면서 제가 알고 있는 중국인의 한 얼굴, 인간 심연의 한 그늘이라도 그려낼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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