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 폭행 … 회장 지시인가, 임원 과잉 충성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이윤재 피죤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에 소환되고 있다. 이 회장은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이은욱 전 피죤 사장을 청부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이윤재(77) 피죤 회장이 5일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소환돼 이은욱(55) 전 피죤 사장을 청부폭행한 의혹에 대해 조사받았다. 조사의 핵심은 이 회장이 회사 직원에게 3억원을 주면서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이 전 사장을 폭행하도록 지시했는지 여부다. 경찰은 특히 조폭이 이 전 사장을 납치하려 했는지도 조사했다. 경찰은 이날 밤 늦게 이 회장을 돌려보냈으며 7일 오전 10시 이 회장을 재소환 조사키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는 60% 정도 마쳤고, 40% 정도 남았다”고 말했다.

 ◆“폭행 당일 돈 건네”=이 회장은 이날 오후 2시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나왔다. 환자복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이 회장에 대한 조사는 변호사가 입회한 가운데 경찰서 1층 형사과에 있는 진술녹화실에서 진행됐다.

 경찰은 최근 이 전 사장을 폭행한 광주 폭력조직 ‘무등산파’ 소속 조직원 3명을 구속한 데 이어 이들에게 폭행을 사주한 혐의로 피죤 인사·재무 담당 이사인 김모(50)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이 회장이 폭행을 사주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폭행사건이 일어난 지난달 5일 이 회장이 5만원권 6000장(3억원)을 김 이사에게 두 차례에 나눠 전달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회장이 폭력배 동원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했는지 여부는 수사를 통해 가려내야 할 부분이다. 경찰은 보다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4일 피죤 본사의 김 이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단순 폭행인가, 납치 시도인가=이 전 사장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건 직후엔 경황이 없어 경찰에서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지만 당시 폭력배 2명이 내 팔을 뒤로 꺾고 2~3m 떨어진 검은색 그랜저로 끌고 가려 했었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청부폭행과 납치 미수 등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행사건 왜 일어났나=이 회장과 이 전 사장의 갈등은 올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30여 년간 섬유유연제 시장 1위 자리를 지켜온 피죤은 올해 점유율이 20%대까지 내려갔고, 다른 업체에 업계 1위 자리도 내줬다. 피죤은 지난 2월 유한킴벌리 부사장 출신인 이씨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4개월 만인 지난 6월 이 전 사장을 돌연 해임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이씨가 공동 대표이사로 영입됐음에도 단독 대표이사로 마음대로 등기를 바꾸고, 무단으로 자금을 차입해 썼다”는 등의 이유였다. 이 전 사장은 해임을 당하자 지난 7월 피죤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해고 무효 및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 전 사장은 “공금 유용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취임한 지 몇 달도 안 된 전문경영인이 무슨 권한이 있어 돈을 빼돌리겠나”고 말했다. 이에 맞서 피죤 측은 “소송 제기 과정에서 회사의 비밀을 누설했다”며 이 전 사장에게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상태다.

글=송지혜·이한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